2024년 12월 3일 밤, 한국 사회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이후 몇 시간 동안 광장과 국회 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외부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시민들이 직접 찍은 영상과 기록만으로 재구성한 작품이 바로 이명세 감독의 〈란12.3〉이다. 별도의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없이, 오직 시민들의 휴대폰 화면과 거리의 소리, 그리고 음악만으로 그날의 시간을 따라간다. 이 글에서는 직접 영화관에서 본 감상과 함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시선으로 그날 밤의 풍경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1. 안산 CGV에서 본 란12.3 영화 후기
오늘 아침 10시 회차로 안산 CGV에서 〈란12.3〉을 혼자 보고 왔다. 평일 오전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리가 꽤 차 있어서 조금 놀랐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다큐멘터리와는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외부에서 새로 촬영한 인터뷰 같은 건 없고, 시민들이 그날 직접 찍은 영상과 기록만 모아 한 편의 작품으로 엮었는데, 영화를 끌고 가는 진짜 힘은 의외로 음악에서 나왔다. 속도감이 압도적이라 상영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다큐라기보다 한 편의 잘 짜인 극영화에 가까운 몰입감을 줬다. 특히 시민들이 군인들 앞을 가로막고,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마지막 장면까지 손에 땀이 났다. 이명세 감독은 역시 비주얼 시네마의 거장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다만 워낙 호흡이 빨라 사전 정보가 부족한 관객에게는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다는 점이 살짝 아쉬웠다.

2.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력과 폭력의 차이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70년에 펴낸 책 《폭력에 관하여(On Violence)》에서, 우리가 흔히 같은 것으로 묶어 쓰는 '권력'과 '폭력'이 사실은 정반대 개념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했다. 폭력은 무기 같은 도구가 필요하고,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반면 권력은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에 모여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권력이 나타나고, 그들이 흩어지는 순간 권력 또한 사라진다. 그래서 아렌트는 폭력이 권력을 한동안 짓누를 수는 있어도 결코 권력을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통치자가 폭력에 의존하기 시작한 순간이야말로, 시민의 동의에서 나오는 본래의 권력을 이미 잃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란12.3〉이 담아낸 그날 밤의 풍경은, 반세기 전에 쓰인 이 오래된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 그대로 재현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시민 권력은 어떻게 그날 밤을 바꾸었나
12월 3일 밤, 국회로 향하던 장갑차와 무장 병력은 누가 봐도 폭력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휴대폰 하나만 들고 달려 나온 시민들, 군인의 총구 앞을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 의원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자기 자리를 비켜준 시민들의 모습은 아렌트가 말한 '권력의 출현' 그 자체였다. 누구의 명령도 없었는데 같은 자리에 모였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영화가 오로지 시민들의 카메라로만 만들어졌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날의 진짜 권력은 국가나 군이 아니라 거리에 있던 시민들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의 형식 자체가 이미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상영 내내 울컥했던 감정이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어떤 자긍심에 더 가까웠던 이유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알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