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개봉한 〈용감한 시민〉은 신혜선과 이준영이 주연을 맡고 박진표 감독이 연출한 액션 코미디 영화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정교사 승진을 앞두고 모든 불의를 못 본 척하던 기간제 교사 소시민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학생 한수강의 학교폭력을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거운 주제를 만화적 톤으로 풀어 전반적으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작품이지만, 영화 내내 반복되는 한 문장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OTT로 본 가벼운 감상과 함께, 사회심리학의 고전 이론인 방관자 효과로 영화의 진짜 메시지를 짚어보려 한다.

1. Wavve로 본 용감한 시민 영화 후기
평소에 좋아하는 신혜선 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 하나로 Wavve에서 〈용감한 시민〉을 틀었다. 거창한 의미보다는 그냥 가볍게 한 편 보고 잠들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끝까지 잘 봤다. 신혜선 배우는 그동안 〈철인왕후〉, 〈마이 디어 미스터〉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결을 이번에도 잘 살려서, 짓궂고 능청스러운 소시민의 일상과 가면을 벗고 링 위에 올라서는 히로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무엇보다 의외였던 건 액션이었다. 큰 키와 길게 뻗는 팔다리로 시원시원한 발차기와 펀치를 보여주는데, 첫 액션 도전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이준영 배우의 한수강은 약점이 없는 절대악으로 그려져 다소 평면적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후반부의 카타르시스가 그만큼 더 짙어진다. 분명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인데, 만화적인 연출과 경쾌한 편집 덕분에 보는 동안 부담은 거의 없었다. 깊은 여운보다는 시원하게 응어리를 풀어내는 사이다 한 캔 같은 영화였다. 머리 비우고 싶은 주말 저녁에 가볍게 보기에 딱 좋다.

2. 방관자 효과란 무엇인가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 이론 중 하나다. 1964년 미국 뉴욕 퀸스 지역에서 일어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 출발점이 되었다. 한 여성이 새벽 시간에 자택 근처에서 30분 넘게 흉기에 공격당하는 동안, 인근 아파트의 적지 않은 주민이 그 상황을 인지했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신고하거나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이 충격적인 보도에 자극받은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é)는 1968년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한 가지 역설을 증명해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와줄 가능성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책임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동시에 일어나면서, 결국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결과가 만들어진다. 둘째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다.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별일 아닌가 보다"라고 잘못 해석하면서, 모두가 서로의 침묵을 핑계 삼아 침묵을 이어가는 현상이다.

3. 학교폭력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인가
이 시각으로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용감한 시민〉이 진짜 겨누는 대상은 한수강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영화 속 학교에는 불의를 알면서도 정교사 자리 때문에 침묵하는 동료 교사, 권력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교감, 친구가 맞는 모습을 보면서도 카메라조차 들지 않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한수강의 폭력이 그토록 오래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방관자 효과에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책임을 나눠 가지면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되고, 모두가 서로의 침묵을 보며 "별일 아닌가 보다"라고 자신을 설득해온 결과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면을 쓴 학생들이 사이다 결말에 동참하는 장면이 묘하게 뭉클한 것도 그래서다. 누군가 단 한 사람만 먼저 움직이면, 분산되어 있던 책임감은 다시 모일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떠나며 가볍게 즐긴 한 편의 액션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한 문장이 머리에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 사회의 많은 부조리는 한 명의 절대악이 아니라 침묵을 선택한 다수의 평범한 우리에게서 자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