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에 개봉한 〈듄(Dune)〉은 미국 SF 작가 프랭크 허버트가 1965년에 발표한 동명의 대하 소설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상화한 SF 서사극이다.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둘러싸고 거대 가문들이 벌이는 정치적 암투, 그리고 그 안에서 한 평범한 청년이 메시아로 떠오르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글에서는 직접 극장에서 본 감상과 함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적 권위' 이론을 빌려 폴 아트레이데스가 어떻게 한 행성의 메시아로 자라나는지 그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려 한다.

1. 서울 용산 CGV에서 본 듄 영화 후기
〈듄〉은 어떤 화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체감이 크게 달라지는 영화다. 다행히 서울 용산 CGV의 큰 상영관에서 보게 되어, 빌뇌브 감독이 의도한 압도적 스케일을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한스 짐머의 사운드트랙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았다. 거대한 모래벌레가 화면을 뚫고 솟구치는 순간, 그 진동에 가까운 저음이 좌석을 흔드는 경험은 작은 화면에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종류의 감각이다. 첫 관람을 큰 스크린으로 한 건 정말 다행한 선택이었다고 두고두고 생각한다.
2. 소설을 모르고도 빠져드는 듄의 세계관
사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베네 게세리트, 멘타트, 퀴사츠 해더락 같은 낯선 고유명사가 쏟아질 때마다 약간 긴장했지만, 의외로 따라가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빌뇌브 감독이 모든 설정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의 표정과 공간의 분위기만으로 핵심을 짚어주기 때문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 신비감을 즐기게 되고, 그 사이 어느새 이 거대한 우주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듄을 처음 만나는 입구로서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영화였다.

3. 아라키스, 사막 위에 세워진 우주 정치극
평소 SF 영화를 좋아해 종족 간 전쟁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익숙한 편인데, 〈듄〉은 그중에서도 결이 사뭇 다르다. 화려한 광선 무기가 난무하는 대신, 정치와 자원과 종교가 얽힌 묵직한 권력 다툼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사막 행성 아라키스에서만 채취되는 '스파이스 멜란지'는 우주여행과 수명 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 자원으로, 우리 시대의 석유를 떠올리게 한다.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황제와 대가문들이 손을 잡았다 등을 돌리고, 그 와중에 원주민 프레멘은 자기 땅에서 생존을 건 싸움을 이어간다. 우주판 〈왕좌의 게임〉이라는 평이 괜한 말이 아니다.
4. 폴 아트레이데스, 한 소년의 운명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폴 아트레이데스는 영화의 진짜 중심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 그는 칼라단 행성의 공작 가문 후계자, 즉 부유하지만 평범한 열일곱 살 소년에 가깝다. 그러나 어머니 제시카를 통해 베네 게세리트의 비밀스러운 훈련을 받았고, 매일 밤 사막의 한 소녀가 등장하는 같은 꿈을 꾼다. 가문이 황제의 명으로 아라키스로 이주하면서 그의 운명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문의 몰락과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사막 한가운데로 내던져지는 과정을 거치며 폴은 더 이상 어제의 자신일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간다. 그 변모의 출발점이 바로 이 영화다.

5. 막스 베버가 말한 카리스마적 권위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22년 사후에 출간된 대저 《경제와 사회(Wirtschaft und Gesellschaft)》에서 사람들이 어떤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를 분석하며 권위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법과 제도에 근거한 '합법적 권위', 오랜 관습이 만들어낸 '전통적 권위', 그리고 한 인물의 비범한 자질에 대한 추종자들의 믿음에서 비롯되는 '카리스마적 권위'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셋 중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가장 불안정하다. 베버는 이 권위가 평온한 시대보다는 위기와 격변의 시대에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기존 질서로는 더 이상 자신을 지킬 수 없다고 느낄 때, 비범한 한 사람을 향한 절대적 신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6. 메시아의 탄생, 베네 게세리트와 프레멘의 예언
베버의 시선으로 보면 〈듄〉의 세계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만들어지는 거의 완벽한 실험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권위가 결코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밀 결사 베네 게세리트는 수 세기 전부터 아라키스에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이라는 메시아 예언을 의도적으로 심어 두었다. 가혹한 사막에서 외부의 침탈을 견디며 살아온 프레멘들은 그 예언을 자신들의 종교적 희망으로 받아들였고, 폴이 등장한 순간 그를 그 예언의 주인공으로 호명할 모든 준비를 이미 마쳐 두고 있었다. 카리스마는 자연 발생적인 천재성의 산물이 아니라, 추종자들의 기다림과 정교한 설계가 함께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베버의 통찰이 그대로 펼쳐진다.
7. 카리스마는 왜 위험한가, 그리고 듄2로 가는 길
베버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한 사람을 거의 신적인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에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그 권위에 어떠한 견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듄〉의 마지막 장면에서 폴이 짧게 마주하는 환영,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으로 우주 곳곳에서 벌어질 거대한 성전(지하드)의 풍경은 베버의 이 경고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다. 영웅이 등장하는 카타르시스 뒤편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모의 폭력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다. 영화관을 나서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폴의 늠름한 옆모습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운명 앞에서 잠시 두려워하던 표정이었다. 어쩌면 진짜 영웅의 자리에 서기 직전,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짓게 되는 표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