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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우리 영화 후기와 키르케고르의 반복과 회상으로 본 첫사랑

by Life philosophy 2026. 5. 7.

한국 영화 〈만약에 우리〉는 2018년 중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를 한국 정서로 다시 옮긴 리메이크다. 명절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이 사랑에 빠지고, 함께 가난한 시절을 지나며 점점 어긋나다 결국 서로를 놓아주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이 그 시절을 돌아보며 "만약 그때 우리가…"라는 가정을 끝없이 던지는 동안, 영화는 한 가지 질문을 가만히 던져둔다. 우리 인생은 어떤 회상의 자리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가. 이 글에서는 직접 본 감상과 함께,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반복과 회상' 개념을 빌려 영화가 남기는 여운을 들여다보려 한다.

만약에 우리 영화 포스터

1. 롯데시네마 서수원점에서 혼자 본 만약에 우리 영화 후기

평일 저녁, 롯데시네마 서수원점에서 〈만약에 우리〉를 혼자 보러 갔다. 자리에 앉으면서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는데, 혼자 영화를 보러 온 또래 남자 관객이 의외로 많았다. 이렇게 같은 또래의 남자들이 잔뜩 모인 풍경은 흔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그 풍경의 이유가 천천히 짐작되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청춘의 사랑, 그 시절의 어긋남, 한참 지난 뒤 우연히 다시 마주치는 첫사랑. 그 익숙한 풍경 앞에서 어떤 관객은 조용히 눈가를 닦았고, 어떤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영화 자체보다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풍경이, 어쩐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음에 남았다.

만약에 우리 영화 장면1

2. 먼 훗날 우리, 한국판 리메이크가 마주한 우리의 첫사랑

원작 〈먼 훗날 우리〉는 2018년에 개봉한 중국 영화로, 배우 류약영(劉若英)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정백연과 주동우가 주연을 맡았다. 베이징에서의 가난한 청춘 시절과 그 시절이 한참 지난 뒤의 회상이라는 이중 구조가 동아시아 관객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만약에 우리〉는 그 큰 줄기를 한국의 풍경과 한국 청춘의 호흡 위에 다시 옮겨놓았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도시, 다른 언어, 다른 정서로 다시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묘한 경험이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 앞에서 한 번 더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지고, 우연히 다시 마주치는 짧은 순간이 처음 보는 풍경처럼 새롭게 다가온다. 좋은 이야기에는 두 번 본다고 해서 지루해지지 않는 힘이 있다.

만약에 우리 먼훗날 우리 영화 장면1

3. 돈이 없어 자존감이 바닥이던, 누구에게나 있던 그 시절

이 영화에서 가장 깊게 와닿은 부분은 결국 남자 주인공의 자존감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만, 매일의 현실은 그 마음과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좁은 자취방,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일거리, 텅 빈 통장. 그녀에게 더 좋은 것을 사주지 못하고 더 큰 약속을 하지 못하는 매 순간마다, 그의 자존감은 바닥을 한 뼘씩 더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 풍경이 그렇게까지 익숙하게 느껴진 이유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한때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천천히 멀어지게 만들었다. 영화관에서 눈가를 닦던 또래 관객들도, 어쩌면 그 시절의 어떤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마주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4. 키르케고르가 말한 반복과 회상이란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1843년에 펴낸 《반복(Gjentagelsen)》을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인간이 자기 인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다시 살아내는가를 깊게 다루었다. 그가 자신의 일기에 적어둔 한 문장은 오늘날까지 자주 인용된다. "인생은 앞으로 살아야 하지만, 뒤로 돌아볼 때만 비로소 이해된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매 순간을 미래를 향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 시간을 살고 있는 동안에는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고, 한참 지난 어느 날 가만히 뒤를 돌아볼 때야 비로소 그 시절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가 구분한 두 가지 태도가 있다. 옛날 풍경에 멈춰 머무는 '회상(Erindring)'과, 과거의 의미를 지금의 자기 안으로 다시 끌어와 새로운 자리를 짓는 '반복(Gjentagelse)'이다. 키르케고르가 우리에게 권한 길은 단연 후자였다.

 

5. 인생은 앞으로 살되, 뒤로 돌아볼 때만 이해된다

이 시선으로 〈만약에 우리〉를 다시 들여다보면 영화의 구조가 한층 또렷해진다.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난 그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끊임없이 과거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회상은 단지 옛날을 그리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그때의 자기 자신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그 시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너무 커서 서로를 놓아버린 것이었다는 사실, 가난이 사랑을 끝낸 것이 아니라 가난이 만든 자기 자신의 비좁음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 그 모든 진실은 그 시절을 살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한참 지나 가만히 돌아본 자리에서야 비로소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뒤로 돌아볼 때만 이해되는" 시간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만약에 우리 영화 장면3

6. 만약에 우리, 라는 가정 너머에 남는 것

영화 제목 〈만약에 우리〉가 던지는 그 가정은 사실 끝까지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만약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만약 우리가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말한 진짜 반복은 그 가정 너머에 있다. 옛 풍경에 멈춰 그리워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때 보이지 않던 진실을 지금의 자기 안으로 끌어와 더 단단한 자리를 짓는 일. 그래서 영화관을 나서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해야 한다는 미련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기 자신과 가만히 화해하는 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의 자리는 사실 만약에 내가 그때의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면, 이라는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첫사랑의 풍경 너머에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그 시절의 자기 자신이라는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