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에 개봉한 〈무간도 3: 종극무간(無間道Ⅲ)〉은 유위강과 맥조휘 두 감독이 만든 무간도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1편의 옥상 장면 이후 진영인이 사라진 자리,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유건명이 살아가는 시간이 한 축이고, 1편 이전에 진영인이 잠입 형사로 활동하던 시기가 다른 한 축이 되어 두 시간이 교차한다. 시리즈를 닫는 작품답게 이번 편은 액션보다도 인물의 내면을 가장 깊은 곳까지 비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글에서는 OTT로 다시 본 감상과 함께,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의 '거울 단계'와 '타자의 욕망' 개념을 빌려 두 잠입자의 마지막 풍경을 들여다보려 한다.

1. OTT로 본 무간도 3편 영화 후기
1편과 2편을 차례로 다시 본 뒤 곧장 이어서 〈무간도 3〉을 봤다. 시리즈를 묶어서 보고 나니 비로소 이 영화가 닫고 있는 것이 한 사건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이 어디로 흘러갔는가에 관한 긴 답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진영인은 1편에서 이미 떠났지만 3편에서도 영화의 절반은 그의 자리이고, 양조위는 그 절반을 다시 한번 가라앉은 눈빛으로 채운다. 유덕화의 유건명은 1편 마지막의 차가운 표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흔들림을 끝내 감추지 못한다. OTT로 차분히 다시 보니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결국 시간 그 자체였다.
2. 시리즈를 다시 보고 느낀 무간도 1, 2, 3편 종합 후기
시리즈 세 편을 모두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단지 잠입 형사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도시 안에서 흘러간 시간의 기록이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1편에서 우리가 본 양조위와 유덕화의 깊은 눈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2편이 천천히 되짚어주었고,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 어디로 도착하는지를 3편이 조용하게 닫는다. 그러는 동안 인물들은 모두 자기만의 말할 수 없는 사정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1편에서 사르트르식 자기기만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은 2편에서 그람시가 말한 거대한 헤게모니의 그물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3편은 그 두 흐름이 마지막에 한 인물의 정신 안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시리즈를 다 보고 나면 우리 자신의 일상까지 함께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3. 진영인이 떠난 뒤 유건명에게 일어난 일
3편의 진짜 무거운 시간은 1편 옥상 장면 이후의 유건명에게 흐른다. 자기가 진영인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그는 죽은 진영인의 흔적을 자기 안으로 천천히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진영인의 책상에 앉아보고, 그가 다녔던 정신과를 찾아가고, 그의 파일을 자기 손으로 다시 읽고 정리한다. 외부에서 보면 정의 구현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르다. 그는 자기가 십 년 동안 쓰고 있던 가짜 경찰의 가면을 벗고, 죽은 사람의 진짜 자아를 자기 안에 들여놓으려 하고 있다. 유덕화는 이 미세한 균열을 점점 더 깊어지는 시선 한 줄기로 정확히 그려낸다.
4. 자크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와 타자의 욕망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1949년에 발표한 논문 〈거울 단계가 정신분석 경험에서 드러나는 자아 형성의 한 기능으로서〉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지를 한 가지 풍경으로 설명했다.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아기는 거울 앞에 처음 섰을 때, 그 안에 비친 매끈하고 완전한 모습을 보고 흥분한다. 그러나 거울 속의 그 모습은 아직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자기 자신의 진짜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이상화된 이미지일 뿐이다. 라캉은 자아가 처음부터 자기 안이 아니라 바깥의 한 이미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욕망조차 자기 것이 아니라 결국은 '타자의 욕망(le désir de l'Autre)'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그 욕망의 출처는 늘 우리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5. 유건명의 거울, 죽은 사람의 자아를 빌려 입다
이 시선으로 〈무간도 3〉의 유건명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의 균열이 단순한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그는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는 자리에 도착해 있다. 그가 십 년 동안 만들어온 좋은 경찰의 이미지는, 라캉이 말한 거울 속의 매끈한 이상처럼 그를 매혹시켜 왔다. 그러나 진영인이 죽은 뒤 그는 그 이미지가 진짜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자리를 욕망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동경해 온 진짜 좋은 경찰, 즉 진영인의 자아를 자기 안에 끌어들이려 한다. 죽은 사람의 자아를 빌려 입어서라도 자기가 평생 욕망해 온 그 거울 속 모습이 되어보려는 마지막 시도다. 라캉식으로 말하면 그의 욕망은 끝까지 자기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6. 진영인의 자리,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은 사람
유건명의 마지막 풍경이 한층 처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그의 곁에 늘 진영인의 다른 시간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3편에서 양조위가 다시 채우는 진영인은, 정신과 의사 이심아 앞에서만 잠시 무방비해지는 한 사람이다.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가짜 조직원으로 살았지만, 그 가짜 자아 아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단 한 번도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사람이었다. 사르트르식으로 말하면 진영인은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일 의식적으로 저항한 인물이고, 라캉식으로 말하면 거울 속의 매끈한 이미지에 자기를 내어주지 않은 드문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이 그토록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가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은 채 사라졌기 때문이다.
7. 거울 너머의 자기, 시리즈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시리즈 세 편을 모두 닫고 마지막에 가장 오래 머문 생각은, 결국 누구의 잘못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매일 어떤 거울 앞에 서 있고, 그 거울 안에는 우리가 바라는 가장 좋은 모습이 비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이미지에 끌려 평생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거울이 누구의 것인지, 그 안의 욕망이 진짜 내 것인지 한 번도 묻지 않은 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유건명처럼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자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거울에서 잠시 눈을 돌려 진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무간도 시리즈가 한 도시의 어두운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거울 너머의 자기를 잊지 말라는 조용한 한마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