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개봉한 〈무간도(無間道)〉는 유위강과 맥조휘 두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하고 양조위와 유덕화가 주연을 맡은 홍콩 누아르의 걸작이다. 마약 조직에 잠입한 경찰 진영인(양조위)과 경찰에 잠입한 조직원 유건명(유덕화)이 같은 도시 안에서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가, 두 사람의 정체가 같은 사건 위에서 천천히 부딪쳐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Infernal Affairs'라는 영문 제목 그대로, 영화는 경찰과 범죄 조직의 단순한 대결을 넘어 한 인간이 가짜 자아 속에서 얼마나 오래 자신을 견딜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글에서는 직접 본 감상과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자기기만(mauvaise foi)' 개념을 빌려 두 인물의 심리 변화를 들여다보려 한다.

1. 다시 봐도 명작인 무간도 1편 영화 후기
언더커버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묘한 긴장과 슬픔이 동시에 차오른다. 〈무간도〉는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다시 봐도 양조위의 눈빛 연기는 정말 기가 막힌다. 한 마디 대사 없이도 그가 지난 십 년 동안 어떤 무게를 끌고 살아왔는지를 단번에 전달하는 그 눈은, 어떤 액션 장면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홍콩 누아르를 보며 자란 세대에게 〈무간도〉는 그 시절의 정서를 한층 성숙한 결로 이어받은 작품이라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2. 양조위와 유덕화, 거울처럼 마주 선 두 인물
〈무간도〉의 가장 매력적인 구조는 두 주인공이 정확히 거울처럼 대칭을 이룬다는 점이다. 양조위가 연기한 진영인은 경찰이지만 십 년 넘게 마약 조직 안에서 조직원으로 살고 있고, 유덕화가 연기한 유건명은 조직의 사람이지만 같은 시간 동안 경찰 제복을 입고 누구보다 모범적인 형사로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짜 자기 모습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며 매일 그 자리를 견디고, 다른 한 사람은 가짜 자기 모습이 점점 진짜처럼 마음에 들기 시작해 두려워한다. 같은 도시, 같은 시간, 그러나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인물의 시선이 옥상에서 마주치는 그 짧은 순간에 영화의 모든 긴장이 한꺼번에 응축된다.

3.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mauvaise foi)이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1943년에 펴낸 대표작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에서 '자기기만(mauvaise foi)'이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직역하면 '나쁜 신념' 정도지만, 의미상으로는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인간 특유의 태도를 가리킨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이기에 늘 무거운 책임 앞에 서게 되고, 그 무게가 너무 버거울 때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정해진 어떤 역할에 불과한 듯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그가 든 유명한 예가 카페 종업원이다. 한 종업원이 손님 앞에서 너무도 완벽하게 '종업원다운' 동작을 연기할 때, 그는 사실 자기 자유로부터 도망쳐 '종업원'이라는 사물의 자리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기만이란 곧 자기 자유를 외면하고 어떤 역할에 자신을 묶어버리는 일이다.
4. 진영인, 진짜 경찰이 가짜 조직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진영인의 비극은 그가 십 년 동안 매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왔다는 데 있다. 그는 분명 경찰이지만,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다. 진짜 자아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 반장 한 사람뿐이고, 그와의 교신은 모스 부호처럼 짧고 위험한 신호로만 가능하다. 사르트르의 시선으로 보면 진영인은 자기기만에 빠진 인물이 아니라 그 정반대 자리, 즉 매일 자기기만에 저항하며 사는 사람이다. 자기 정체를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만 잠시 무방비해지고, 그 짧은 시간조차 진짜 자신으로 숨 쉬는 마지막 통로다. 양조위의 눈빛이 그토록 깊게 가라앉아 있는 이유, 그가 한 마디 말 없이도 보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이 십 년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5. 유건명, 가짜 경찰이 진짜가 되고 싶어진다는 것
유건명의 자리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다. 그는 분명 조직의 사람으로 경찰에 들어왔지만, 그 자리에서 십 년을 살아내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연기하던 '좋은 경찰'이라는 가면이 자기 자신보다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는 약혼자 앞에서, 동료 앞에서, 그리고 거울 앞에서조차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건명은 자기기만의 가장 정교한 형태에 들어선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단지 '경찰 역할을 하는 조직원'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자기기만은 결국 자기 자유로부터 도망친 자리이기에, 진짜 경찰이 되려는 그의 욕망은 바로 그 욕망 때문에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다. 유덕화는 이 분열을 점점 흔들리는 표정 하나로 정확하게 그려낸다.

6. 가면 너머의 자기,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영화관을 나서며 가장 오래 머문 생각은 결국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에서, 가족 앞에서, SNS 위에서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떤 가면은 잠시의 편의를 위한 것이고, 어떤 가면은 너무 오래 써서 진짜 얼굴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만큼 자라버렸다. 〈무간도〉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누가 진짜 경찰이고 누가 진짜 조직원인가가 아니다.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가면을 벗어보았을 때, 그 아래 남아 있을 진짜 나의 얼굴을 우리는 여전히 알아볼 수 있는가. 그것이다. 사르트르가 평생 강조한 것은 자유의 무게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었다. 가면 너머의 자기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 그 무게를 다시 들어올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무간도〉 2편으로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