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에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누적 관객 1,628만 명을 넘기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화제작이다. 조선 6대 왕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시기를 배경으로,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을 모셨다는 짧은 역사 기록 한 줄에서 출발해 두 시간짜리 한 편의 이야기로 빚어낸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직접 영화관에서 본 감상을 정리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를 빌려 단종과 세조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왜 그토록 갈리게 되었는지 짚어보려 한다.

1. 화성봉담 CGV에서 본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후기
4월 1일 저녁, 화성봉담 CGV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 단종의 비극은 학교에서 한 번쯤은 다 배운 이야기라 줄거리 자체에는 큰 기대를 두지 않았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익숙한 이야기도 이렇게 다른 결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영화의 출발점이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는 단 한 줄짜리 역사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 짧은 한 줄에서 두 시간 가까운 이야기를 길어 올린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는 비장한 충신이 아니라 평범한 시골 사람의 어색함과 따뜻함, 그리고 천천히 차오르는 정을 보여줘서 좋았고, 박지훈이 맡은 어린 임금 단종은 절망과 체념, 그러면서도 어딘가 남아 있는 왕의 품위를 함께 그려냈다. 두 사람 사이의 호흡 자체가 이 영화의 정서였다. 평일 저녁이라 상영관이 한산해서 오롯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옆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극인데도 과한 신파 없이 잔잔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1,600만 흥행이 괜한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德) 윤리란 무엇인가
영화관을 나서며 가장 오래 머문 질문은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평가되는가"였다. 이 물음에 정통으로 답을 내놓은 철학자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기원전 4세기에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덕(arete, 아레테)'을 사람이 갖춘 탁월함으로 풀이하면서, 한 번의 큰 행위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행동의 습관 속에서만 진짜 덕이 자라난다고 보았다. 그가 말하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는 단순한 행복이 아니라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즉 덕 있는 삶을 꾸준히 살아낼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깊은 의미의 좋은 삶이다. 핵심은 분명하다. 사람의 진짜 가치는 그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성품을 갖춘 사람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정의(dikaiosyne)를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꼽았는데,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약한 자를 짓밟는 행위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큰 업적을 남겼더라도 그 과정에서 정의의 덕을 잃은 사람은 결국 후세의 기억 속에서 그 업적조차 서서히 빛이 바래게 된다.

3. 단종과 세조, 업적과 인격 사이에서
이 관점에서 보면 단종과 세조에 대한 후세의 엇갈린 평가는 한결 명쾌해진다. 수양대군, 그러니까 세조는 왕위에 오른 뒤 6조 직계제 부활, 직전법 시행, 국방 정비 등 굵직한 업적을 적지 않게 남겼다. 통치자의 능력만 따지면 결코 무능한 임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출발점이 어린 조카의 왕좌를 빼앗고 끝내 죽음으로 내몬 일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그의 업적은 영영 짙은 그늘을 벗을 수 없게 됐다. 반면 단종은 너무 어려서 제대로 된 업적을 남길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만, 부당하게 빼앗긴 왕좌와 비극적인 최후 때문에 시대가 흐를수록 오히려 더 깊이 사랑받는 인물로 남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조는 업적은 쌓았으되 정의의 덕을 잃었고, 단종은 업적은 없었으나 죄 없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은 거창하지 않았다. 큰 성공 한 번보다 매일의 작은 친절과 정직이 결국 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가장 많이 이룬 사람이 아니라, 가장 따뜻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