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개봉한 〈라라랜드(La La Land)〉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만든 뮤지컬 로맨스 영화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엠마 스톤이 연기한 배우 지망생 미아가 LA라는 도시 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꿈을 향해 달리다, 결국 서로 다른 자리에 도착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화려한 뮤지컬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 두고두고 마음을 누르는 무거운 질문 하나가 깔려 있다. 한 사람이 자기 꿈과 자기 사랑을 동시에 손에 쥐는 일은 정말 가능한가. 이 글에서는 안산 롯데시네마에서 처음 본 뒤 OTT로 여러 번 다시 본 감상과 함께,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빌려 영화가 마지막에 우리에게 남기는 그 깊은 여운을 들여다보려 한다.

1. 안산 롯데시네마에서 처음 본 라라랜드 영화 후기
〈라라랜드〉를 처음 본 곳은 안산 롯데시네마였다. 그 뒤로 쿠팡플레이에서 세 번을 더 봤으니 통틀어 네 번을 본 셈이다. 그런데도 매번 같은 장면에서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처음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결말이었다. 그렇게까지 서로를 사랑했던 두 사람이 마지막에 결국 다른 자리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이 한참 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 우연히 들른 미아가 자기 남편 옆에서 그를 바라보는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한 자리에서 만나며 펼쳐지는 상상의 시퀀스에서는 정말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이 헤어지지 않고 결혼해서 함께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환상이 화면 안에 통째로 펼쳐지는 그 6분은, 어떤 슬픈 영화 한 편보다 더 깊게 마음을 눌렀다.

2. 다시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영화의 풍경
신기한 것은 다시 볼 때마다 영화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슬픈 영화였다. 두 번째 봤을 때는 두 사람이 함께 춤추던 그리피스 천문대 장면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고, 세 번째 봤을 때는 세바스찬이 재즈에 관해 미아에게 이야기하는 그 진지한 표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나이가 좀 더 들고 나서 다시 본 〈라라랜드〉의 결말은 처음의 그 슬픔과는 사뭇 다른 자리에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지만, 헤어졌기에 각자가 꿈꾸던 자리에 끝내 도달할 수 있었다. 둘 다 자기 꿈을 이룬 풍경이 어쩌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결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같은 영화가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다른 결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묘한 위로였다.

3. 꿈과 사랑, 우리 시대 모든 연인이 마주하는 질문
〈라라랜드〉가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이 영화가 한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자기 꿈을 좇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연인이 어느 순간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질문 하나가 영화 한복판에 깔려 있다. 둘 다 자기 일에서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 그 길이 두 사람을 자꾸 다른 도시로, 다른 자리로 데려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어느 한쪽이 자기 꿈의 속도를 늦추면 두 사람의 사랑은 지킬 수 있겠지만, 그 양보가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형태의 후회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둘 다 손에 쥐는 경우가 분명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이유는, 사실 영화 속 두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어느 순간을 거기서 비춰 보기 때문일 것이다.

4.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에 저주받은 인간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1943년에 펴낸 대표작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에서, 인간이 다른 존재와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 특징을 분명히 짚었다.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자기 자신을 자기 손으로 선택하며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이를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한 줄로 요약했다. 자유는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이 자유의 무게를 두고 "인간은 자유에 저주받았다"는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다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모든 다른 길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 우리 안에 '부재(absence)'의 형태로 남아 우리를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사용한 표현 그대로, 우리는 매일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인생들의 그림자와 함께 살아간다.
5. 마지막 6분, 영화사에서 가장 정확한 부재의 풍경
이 시선으로 〈라라랜드〉의 마지막 6분 상상 시퀀스를 다시 들여다보면 그 장면이 단순히 슬픈 회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세바스찬의 클럽에 우연히 들른 미아가 잠시 그와 시선을 마주칠 때, 영화는 갑자기 시간을 되감아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고 결혼해 함께 살아갔다면 펼쳐졌을 또 다른 인생을 화면 가득 펼쳐 보인다. 함께 파리로 가고, 함께 아이를 낳고, 함께 한 작은 집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그 풍경. 그러나 그 모든 화면이 다시 현실의 클럽 안 한 컷으로 잘려 나가며, 두 사람은 결국 가만히 미소만 주고받은 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 6분이 그토록 마음을 누르는 이유는, 그것이 사르트르가 평생 우리에게 말해 온 그 '부재의 공간'을 영화사에서 가장 정확하게 시각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그 다른 인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선 안에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아 있었다.

6. 처음엔 슬펐던 영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보인 이유
사르트르의 사상이 가장 깊게 와닿는 자리는 결국 영화의 결말을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의 마음 변화에 있다. 처음 봤을 때 그 6분이 그토록 슬펐던 이유는, 우리가 그들이 살아보지 못한 그 인생을 '잃어버린 무엇'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우리 자신이 몇 번의 선택을 거쳐 어떤 자리에 도달해 본 뒤, 같은 장면이 다른 결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르트르의 시선에서 그 다른 인생은 사라진 손실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매일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신을 선택해 왔다는 사실의 가장 분명한 증거다. 부재가 거기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선택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다. segi님의 시점 변화는 그래서 단순한 취향의 이동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의 무게를 천천히 받아들이게 되는 어떤 성숙의 풍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7. 꿈과 사랑,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다른 인생들
영화를 네 번이나 보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라라랜드〉가 마지막에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슬픔이 아니라, 두 사람이 자기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냈다는 단단한 긍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세바스찬은 자기 재즈 클럽을 갖게 되었고, 미아는 자기가 꿈꾸던 자리에 도달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자신이 평생 갈망해 온 그 풍경 안에 마침내 들어섰다. 다만 그 안에 서로의 손이 함께 잡혀 있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 선다. 어떤 길은 자기 꿈으로, 어떤 길은 자기 사랑으로, 어떤 길은 둘 다로 향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자기 안에 부재의 형태로 함께 안고 가게 된다. 그 부재가 평생 따라다닌다는 사실은 슬픔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자기 자신을 자기 손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영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