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마이클(Michael)〉은 전 세계 음악사에서 가장 큰 별 가운데 한 명인 마이클 잭슨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옮긴 전기 영화다. 그의 친조카인 자파 잭슨이 직접 주연을 맡았다는 점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잭슨 파이브의 무대부터 솔로 아티스트로 도약하던 시기를 거쳐 〈Bad〉 투어의 한 장면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자체는 잘 만든 편이지만 한 사람의 거대한 일생을 두 시간에 담는 일에는 끝내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 글에서는 직접 본 감상과 함께,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1936년에 제시한 '아우라' 개념을 빌려 전기 영화라는 장르가 마주하는 가장 깊은 한계를 들여다보려 한다.

1. 서수원 롯데시네마에서 본 마이클 영화 후기
서수원 롯데시네마에서 〈마이클〉을 봤다. 영화관 분위기 자체가 다른 영화와 달랐는데, 객석 곳곳에서 익숙한 곡이 흘러나올 때마다 조용히 따라 부르는 듯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흘러나오는 모든 곡이 귀에 박힐 만큼 익숙했고, 어떤 곡은 다음 가사가 거의 반사적으로 입에서 새어 나올 정도였다. 영화관에 앉아 있는데 어딘가 한 번 다녀온 적 있는 공연장의 한 구석에 다시 와 있는 것 같은 묘한 착각이 들었다. 그 음악의 힘만큼은 어떤 평가도 필요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다만 음악이 영화의 거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가 끝난 뒤 마음 한구석에 가벼운 아쉬움을 남겼다.

2. 잘 만들었지만 끊긴 듯한 플롯, 두 시간의 한계
영화는 분명히 잘 만든 작품이다. 어린 시절의 풋풋한 무대부터 솔로로 거듭나는 결정적 순간들까지 굵직한 장면들이 빈틈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영화가 한 시간 반쯤 흘렀을 무렵부터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두 시간 안에 다 담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사실이다. 〈Bad〉 투어의 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막을 내렸을 때, 아직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풍경 몇 개가 통째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Dangerous〉, 〈HISTORY〉, 〈Invincible〉이라는 거대한 앨범 세 장이 통째로 빠져 있고, 그가 세운 헬 더 월드 재단의 활동,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의 세 아이의 이야기까지 들여다볼 만한 자리가 어디나 남아 있다. 영화의 플롯이 중간에 끊긴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결국 거기에 있었다.

3. 자파 잭슨의 마이클, 너무 잘 알아서 더 어려운 연기
자파 잭슨의 연기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양가적이었다. 그의 외모는 친조카답게 분명 마이클을 닮았고,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정성과 훈련이 묻어난다. 한편으로 그동안 마이클의 진짜 영상을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봐 왔기에 무대 위의 그가 어딘가 한 컷쯤 모자라 보이는 순간이 결국 찾아왔다.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충분히 그럴듯한 마이클로 보일 만한 연기지만, 평생 그의 영상에 길든 팬의 눈에는 가끔씩 그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았다. 이것은 자파 잭슨이라는 배우의 한계라기보다, 원본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남아 있는 한 인물을 다른 누군가가 연기해야 하는 일 자체의 한계에 가깝다.
4.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란 무엇인가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1936년에 발표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글에서 '아우라(Aura)'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가 말한 아우라는 한 예술 작품이 그것이 처음 만들어진 단 한 번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가질 수 있는, 다시는 똑같이 재현될 수 없는 어떤 현존감을 가리킨다. 박물관의 명화 앞에 직접 섰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 특별한 떨림, 콘서트홀에서 가수의 단 한 번뿐인 라이브 무대를 마주할 때 흐르는 그 짧은 시간의 무게 같은 것이다.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처럼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에는 이 아우라가 점점 흩어진다고 보았다. 복제는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해주지만, 그 단 한 번뿐인 시간의 두께만큼은 결코 함께 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 마이클의 아우라, 전기 영화가 끝내 채울 수 없는 자리
이 시선으로 〈마이클〉을 다시 들여다보면 영화가 마주한 한계가 한층 또렷해진다. 마이클 잭슨은 평생 가장 강력한 아우라를 가진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가 1983년 모타운 25주년 무대에서 처음으로 문워크를 선보인 그 단 한 번의 시간은, 어떤 영상으로 다시 보아도 그 자리에 직접 있었던 사람들이 느낀 떨림과 똑같을 수 없다. 그가 〈Thriller〉의 좀비 무리 한가운데서 자기 손을 들어 올리던 그 한 컷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의 영상을 무수히 반복해 보면서도, 동시에 그 영상이 그 시간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자파 잭슨이 아무리 정성껏 그 동작들을 다시 살려내도, 그 한 번뿐인 시간의 아우라까지 함께 복제할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다. 전기 영화라는 장르가 마주하는 가장 깊은 한계가 바로 거기에 있다.
6. 그래도 영화는 만들어진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오른 이유
영화를 보는 동안 자꾸 떠오른 또 한 편의 작품이 있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그린 〈보헤미안 랩소디〉다. 그때도 비슷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라미 말렉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과 충분하다는 평이 부딪쳤고, 진짜 프레디의 영상에 익숙한 팬일수록 그 거리감을 더 또렷이 느꼈다. 그런데도 그 영화는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재현한 단 한 시퀀스로 많은 관객에게 묵직한 감동을 남겼다. 〈마이클〉을 둘러싸고 지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갑론을박이 한창인데, 그것 자체가 마이클이라는 한 예술가가 여전히 얼마나 강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영화가 그 아우라를 완전히 옮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영화의 실패라기보다 그 아우라의 깊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일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래서 부족함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런 영화를 자꾸 보러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