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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영화 후기와 폴 리쾨르의 기억과 망각으로 본 잃어버린 이름

by Life philosophy 2026. 5. 13.

2026년 4월에 개봉한 〈내 이름은〉은 정지영 감독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영화이자, 9,778명의 시민이 직접 후원해 시작된 작품이다. 제7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었고, 우디네 극동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영화는 촌스러운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1998년 봄의 열여덟 살 아들 영옥(신우빈)과, 여덟 살 이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채 살아온 그의 어머니 정순(염혜란)의 두 시간을 천천히 교차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관에서 직접 본 감상과 함께,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기억과 망각' 개념을 빌려 영화가 들려주는 한 가지 약속을 들여다보려 한다.

영화 내 이름은 포스터

1. 롯데시네마 서수원에서 본 내 이름은 영화 후기

롯데시네마 서수원에서 〈내 이름은〉을 봤다. 평일 저녁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관객이 적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 시간쯤 흘렀을 무렵부터 옆자리 곳곳에서 조용한 훌쩍임이 들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큰 사건도 폭발적인 장면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마음을 천천히 두드리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두 배우의 호흡이 가장 큰 힘이었다. 염혜란 배우는 한 사람의 평생을 두 시간 안에 통째로 담아내는 연기를 보여주고, 새얼굴인 신우빈 배우는 그 곁에서 흔들리고 자라는 아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영화관을 나서며 한 가지 분명히 알게 됐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시대의 비극에 관한 작품이 아니라, 그 비극을 끝까지 살아낸 한 사람의 얼굴에 관한 작품이라는 사실이었다.

 

2. 1998년 영옥과 1949년 정순, 두 시간이 만나는 자리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구조는 두 시간이 끊임없이 교차한다는 점이다. 1998년 봄, 학교 폭력과 세력 다툼에 휘말리는 열여덟 살 영옥의 시간. 그리고 1949년 봄, 여덟 살 아이의 기억으로 영영 봉인된 어머니 정순의 시간. 두 사람의 시간은 처음에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옥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폭력의 풍경이, 정순이 마음 깊이 묻어둔 어떤 풍경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이 천천히 드러난다. 정지영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학교 폭력 묘사가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됐던 그 시대의 풍경을 은유적으로 옮긴 것"이라고 직접 밝힌 바 있다. 50년의 거리를 둔 두 시간이 한 가족의 식탁에서 마침내 만나는 그 자리에, 영화의 진짜 무게가 깔려 있다.

영화 내 이름은 장면1

3. 정지영 감독과 시민 9,778명이 함께 만든 영화

이 영화가 특별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정지영 감독이 처음 이 작품을 기획했을 때, "어차피 투자는 받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시민 크라우드 펀딩을 선택했다고 한다. 한 달 만에 4억 원이 모였고, 9,778명의 시민이 그 자리에 자기 이름을 보탰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1만 명에 이르는 후원자와 '430인 릴레이 상영회'를 거쳐 누적 관객 20만 명을 돌파했다. 엔딩 크레딧에는 그 시민들의 이름이 모두 한 줄씩 흘러간다. 누군가는 본명을 적었고, 누군가는 한 글자만 남겼고, 누군가는 자기 마음을 짧은 문장 하나로 적어 두었다. 그 자막이 흐르는 동안 어쩐지 영화관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한 시대의 약속이었다는 사실이 그 한 컷에 통째로 새겨져 있었다.

영화 내 이름은 이재명대통령 사진

4. 폴 리쾨르가 말한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는 2000년에 펴낸 《기억, 역사, 망각(La Mémoire, l'histoire, l'oubli)》에서 한 공동체가 자신의 가장 무거운 과거를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깊은 사유를 남겼다. 그가 보기에 기억과 망각은 단순히 반대 자리에 놓인 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잊은 채 살아갈 수도 없다. 너무 많이 기억하면 과거에 갇혀 다음 걸음을 떼지 못하고, 너무 빨리 잊으면 같은 상처를 다시 만들게 된다. 그래서 리쾨르가 평생 우리에게 권한 길은 '용서받은 기억'이라는 단단한 한 자리였다. 잊지 않되, 과거에 머무르지도 않는 것. 그가 자주 인용한 한 문장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일"이라는 말이었다.

 

5.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기억을 회복한다는 것

이 시선으로 〈내 이름은〉을 다시 들여다보면 영화가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또렷해진다. 영화의 두 시간 동안, 아들 영옥은 자기의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어 했고, 어머니 정순은 잃어버린 자기의 첫 이름을 끝내 다시 마주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이름을 버리려는 시도가, 다른 한쪽에서는 이름을 되찾는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그 두 시간이 마지막에 한 자리에서 만날 때, 영옥은 자기 이름을 지우려던 손을 거두고 어머니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는 일에 자기 자리를 보탠다. 리쾨르가 말한 '용서받은 기억'의 자리가 정확히 거기다. 외면도 회피도 아닌, 잊지 않되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는 단단한 자리. 영화의 마지막 한 컷이 그토록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 자리에서 한 어머니의 이름이 비로소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6.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기로 약속하는가

영화관을 나서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자주 잊고, 그 망각이 익숙해진 만큼 같은 상처가 반복되는 풍경을 무덤덤하게 지나친다. 한 시대의 가장 무거운 상처조차 긴 시간 앞에서는 점점 작아지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옛날이야기로만 들리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이 한 어머니의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그 망각의 자리에 잠시 멈춰 서 보라는 한 가지 권유다. 9,778명의 시민이 자기 이름을 보태 만든 이 영화가 결국 한 어머니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일, 그것이 곧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 보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약속이라는 것을 영화는 차분히 일러주고 있었다.

영화 내 이름은 장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