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개봉한 〈노트북(The Notebook)〉은 닉 카사베티스 감독이 미국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1996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로맨스 드라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소설은 스파크스가 결혼 직후 아내의 조부모로부터 직접 들은 실제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집필한 실화 기반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요양원에서 노신사 듀크가 치매를 앓고 있는 여인에게 노트북에 적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매일 읽어준다. 그러나 그 단순한 구조 안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묶어두기 어려운 깊이가 천천히 펼쳐진다. 이 글에서는 넷플릭스로 본 감상과 함께, 독일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1956년에 펴낸 《사랑의 기술》을 빌려 영화가 가장 묵직하게 묻고 있는 한 가지를 들여다보려 한다.

1. 넷플릭스로 다시 본 노트북 영화 후기
평소처럼 넷플릭스를 둘러보다가 익숙한 포스터에 끌려 다시 〈노트북〉을 재생했다. 이미 봤던 영화인데도 첫 장면의 호숫가 풍경에서부터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라이언 고슬링의 노아와 레이첼 맥아담스의 앨리가 보여주는 젊은 시절의 풋풋한 사랑도 분명 좋지만, 다시 보고 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의외로 노년의 두 사람이었다. 요양원의 흐릿한 조명 아래, 매일 같은 노트북을 같은 호흡으로 다시 읽어주는 한 남자의 옆얼굴. 사랑 영화라기에 떠올렸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자리에서, 영화는 진짜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를 가만히 보여준다. 좋은 영화는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봤을 때 다른 자리에서 더 깊은 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

2. 실화에서 출발한 한 권의 노트북
〈노트북〉의 또 다른 무게는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진짜 인생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서 온다. 원작 소설을 쓴 니콜라스 스파크스는 결혼 직후 아내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로부터 두 분이 살아오신 사랑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그날 들은 한 부부의 평생을 기억하며 1994년부터 2년에 걸쳐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출간된 소설은 56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에 머물렀고, 그 깊이를 알아본 닉 카사베티스 감독이 2004년에 영화로 옮겨놓은 작품이 우리가 아는 〈노트북〉이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에서 묘하게 깊은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그 출발점에 있다. 누군가가 실제로 평생을 걸어가며 만든 이야기는, 아무리 정교한 허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어떤 무게를 처음부터 끝까지 품고 있다.
3. 매일 같은 이야기를 읽어주는 한 남자의 옆얼굴
영화의 진짜 마음은 결국 그 한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거의 잊어버린 아내 앞에서, 노아는 매일 같은 노트북을 같은 호흡으로 다시 읽어준다. 어떤 날은 아내가 잠시 그를 알아보았다가, 또 어떤 날은 끝내 낯선 사람을 보듯 그를 바라본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나던 카니발의 장면부터 차근차근, 마치 처음 들려주는 사람처럼 한 페이지씩 정성껏 읽어 내려간다.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매일 잊혀지는 사람 앞에서 매일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영화는 그 질문에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노아의 옆얼굴 한 컷을 길게 보여줄 뿐이다. 그 침묵 안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평소 우리에게 들려주던 정의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깔려 있다.
4.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1956년에 펴낸 《사랑의 기술(Die Kunst des Liebens)》에서 우리가 평소 사랑에 관해 갖고 있는 가장 익숙한 오해 하나를 정면으로 짚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이다.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사랑은 자연스레 따라오고, 만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프롬이 보기에 사랑은 그런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갈고닦아 가는 '기술'에 더 가깝다. 그가 사용한 영어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사랑을 'falling in love(빠지는 것)'이라고 부르지만, 진짜 사랑은 'standing in love(서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빠지는 일은 한 번의 사건이지만, 서 있는 일은 매일의 의지를 요구한다. 그가 평생 우리에게 권한 사랑의 길은 결국 그 매일의 자리에 단단히 머무는 일이었다.
5.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행위라는 한 줄
이 시선으로 〈노트북〉을 다시 들여다보면 영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정의가 한층 또렷해진다. 프롬은 진짜 사랑이 네 가지 요소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를 향한 보살핌,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 다른 인격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 사람을 끝까지 알아가려는 지식이다. 매일 같은 노트북을 다시 읽어주는 노아의 행위 안에는 이 네 가지가 모두 깃들어 있다. 그는 아내를 보살피고, 자신이 떠안기로 한 책임을 매일 새로 떠안고, 자기를 잊은 아내 한 사람을 끝까지 존중하며, 한 인간의 평생을 모두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자리에서 그녀의 곁을 지킨다. 사랑이 감정의 격류라면 그 감정은 시간이 흐르며 잦아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이 매일 다시 일어나 행하는 의지라면, 그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만큼 길게 이어질 수 있다.

6. 당신을 사랑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한 줄이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생각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에서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게 빛나게 성공했습니다. 나는 한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그 사실 하나로 나에게는 충분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멋진 대사 한 줄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롬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이 한 문장이 얼마나 깊은 선언이었는지 비로소 짐작이 된다. 한 사람을 평생에 걸쳐 사랑한다는 것은 운 좋게 만난 한 번의 인연 때문이 아니라, 매일 일어나 자신의 의지로 그 사랑을 다시 선택해 온 한 인생의 결과라는 것. 그 매일의 선택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마침내 성공한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노트북〉이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 마음을 떠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그 단순하면서도 가장 무거운 진실을 영화 한 편에 통째로 새겨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