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개봉한 〈폭풍 속으로(Point Break)〉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만든 액션 누아르의 컬트 클래식이다. 신참 FBI 요원 자니 유타(키아누 리브스)가 'Ex-Presidents'라는 가면을 쓴 은행강도 일당을 추적하기 위해 서핑 동호회에 잠입하면서, 그 일당의 카리스마적인 리더 보디(패트릭 스웨이지)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유와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와, 그를 잡으려다 그가 외치는 자유에 천천히 사로잡혀 가는 또 한 남자의 풍경. 이 글에서는 넷플릭스로 다시 본 감상과 함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와 '영원회귀' 개념을 빌려 보디가 끝까지 놓지 않은 단 하나의 가치를 들여다보려 한다.

1. 비 오는 날이면 자꾸 생각나는 폭풍 속으로 영화 후기
〈폭풍 속으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한 번 더 손이 가는 영화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봐도 처음 본 듯한 흥분이 살아나는 작품인데, 그 비밀의 큰 부분은 결국 두 배우의 리즈 시절 그 자체에 있다. 키아누 리브스의 자니 유타는 아직 〈매트릭스〉 이전, 어떤 신화의 옷을 입기 전의 한 청년이고, 패트릭 스웨이지의 보디는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자기 카리스마 안에 가두는 거의 종교적인 자유인이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떨어지는 스카이다이빙, 거대한 파도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서핑, 마스크를 쓴 채 비현실적인 속도로 도주하는 은행강도. 그 모든 장면 위에 보디의 단단한 한마디가 흐른다.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적일 수 없어." 남자라면 한 번쯤 마음속에서 따라 외치게 되는, 묘하게 마초적인 카타르시스가 이 영화의 결을 지배한다.

2. 보디라는 인물, 자유를 끝까지 밀어붙인 한 사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누가 봐도 보디다. 그는 단지 멋있는 악당이 아니라 한 가지 신념 위에 자기 인생 전부를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가 보기에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일을 하다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평범한 삶은 살아 있는 삶이 아니라 일종의 '느린 죽음'이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파도와 맨몸의 자기 자신만이 마주하는 그 짧은 시간, 자유낙하 중인 푸른 하늘 한복판의 그 몇 초를 인생의 진짜 시간이라고 부른다. 영화 마지막에 그는 50년에 한 번 온다는 거대한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굳이 다시 보드를 잡고 바다로 들어간다. 누가 봐도 죽으러 가는 길이지만,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 대신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의 평온이 깔려 있다.

3.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와 영원회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3년부터 1885년까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라는 시적인 저작에서 자신의 가장 도발적인 두 개념을 함께 펼쳐놓았다. 첫째는 '위버멘쉬(Übermensch)'다.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를 그대로 따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기만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인간을 가리킨다. 둘째는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라는 사고 실험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한 번이 아니라 영원히, 똑같이, 끝없이 반복된다면 그래도 너는 이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니체에게 진짜 자유로운 인간이란, 그 가혹한 질문 앞에서 "그렇다, 다시 한번 더"라고 답할 수 있는 자였다. 그가 평생 우리에게 권한 길은 결국 그 한 가지였다.
4. 보디의 마지막 파도, 영원회귀를 향해 걸어 들어간 남자
이 시선으로 〈폭풍 속으로〉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면, 보디가 단순한 무모한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이 드러난다. 그는 평생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가치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 그 위에 자기 인생을 올려놓은, 정확한 의미의 위버멘쉬다. 그가 마지막에 50년에 한 번 오는 그 거대한 파도를 향해 걸어 들어간 이유는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 한 번의 순간을 위해서라면 자기 인생 전체를 다시 한번 더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니가 그를 잡지 않고 결국 풀어주는 마지막 결정은, 그가 보디의 그 자유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해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조용한 긍정이다. 그 짧은 컷 안에서 영원회귀라는 무거운 사상이 한 사람의 표정으로 풀어진다.

5.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적이지 않다는 말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결국 보디의 그 한마디였다.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적이지 않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멋있는 대사 한 줄이라고 생각했는데, 니체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이 한 문장이 얼마나 무거운 선언이었는지 비로소 짐작이 된다. 우리 대부분은 매일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그 자리에서 보디의 한마디는 거의 도발에 가까운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너는 지금 너의 인생을 다시 한번 더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비 오는 날 이 영화가 자꾸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어쩌면 그 질문 앞에 잠시라도 정직하게 서 보고 싶은 어떤 충동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풍 속으로〉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컬트 클래식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