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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동궁 — 조선판 콘스탄틴, 그리고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의 귀환

by Life philosophy 2026. 7. 20.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한국 차트 1위에 오른 동궁을 주말에 몰아 봤다. 8부작 리미티드 시리즈라 호흡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소재가 신선했다. 조선의 궁궐을 배경으로 한 오컬트 사극.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구천과 귀신의 소리를 듣는 궁녀 생강이 왕의 부름을 받아 동궁에 깃든 저주를 파헤친다는 설정이다. 보는 내내 한국판 콘스탄틴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초자연적 존재를 상대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랬다.

그런데 이 작품이 단순한 귀신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동궁에 나타나는 저주와 원귀들은 사실 산 자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왕이 되기 위한 권력 다툼, 그 다툼에서 밀려나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의 원한. 그 원한이 저주가 되어 궁궐로 돌아온다. 오컬트라는 장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진짜로 그리는 것은 권력을 둘러싼 인간들의 욕망과 그 욕망이 낳은 폭력의 순환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포스터

권력 다툼이 저주가 되기까지

동궁의 이야기는 세자들의 연이은 의문사에서 시작된다. 궁궐이 발칵 뒤집히고, 왕은 이 저주를 풀기 위해 귀신을 보고 벨 수 있는 구천을 불러들인다. 구천과 생강이 그 저주의 근원을 파헤쳐 갈수록, 저주의 뿌리에는 언제나 산 자들의 권력욕이 자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곁의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벌어진 암투.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 그들의 응축된 원한이 귀신이 되어 궁궐을 떠도는 것이다.

작품이 반전을 거듭하며 밝혀내는 것은 결국 하나의 구조다. 궁궐이라는 공간은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하는 곳이다. 권력,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왕좌. 그 하나의 자리를 향해 수많은 사람이 같은 욕망을 품고 서로 경쟁한다. 그리고 그 경쟁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귀결된다. 동궁의 저주는 바로 그 희생된 자들이 남긴 흔적이다.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

이 구조를 들여다보다가, 한 명의 사상가가 떠오른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이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다. 그는 인간 사회의 폭력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평생 파고들었고, 두 가지 개념으로 그 답을 정리했다. 모방 욕망과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지라르의 첫 번째 통찰은 모방 욕망이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욕망한다는 것이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게 되는 것. 문제는 여러 사람이 같은 하나의 대상을 동시에 욕망하게 될 때 발생한다. 그 대상이 하나뿐이라면, 그것을 둘러싼 경쟁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으로 치닫는다.

동궁의 궁궐이 정확히 그 모방 욕망의 무대다. 왕좌라는 단 하나의 자리를 향해 수많은 이들이 같은 욕망을 품는다. 한 사람이 그것을 욕망하기에 다른 사람도 욕망하고, 그렇게 욕망이 서로를 부추기며 궁궐 전체를 경쟁과 암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세자들의 죽음도, 그 배후의 음모도 모두 그 하나의 자리를 둘러싼 모방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라르의 두 번째 통찰이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그는 이 모방 욕망이 낳은 폭력이 공동체 전체를 파괴할 지경에 이르면, 그 폭력이 한 사람에게로 집중된다고 보았다. 공동체는 자기들의 모든 갈등과 폭력의 책임을 한 희생양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를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되찾는다. 그 희생양은 대개 그 폭력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무고한 자다. 지라르는 인류의 수많은 신화와 종교의 밑바닥에 바로 이 희생양의 이야기가 깔려 있다고 보았다.

동궁의 저주가 정확히 그 희생양의 귀환이다. 권력 다툼이라는 집단적 폭력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자들. 그들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폭력의 대가를 대신 치르고 죽어갔다. 그리고 그 억울한 죽음이 저주가 되어 궁궐로 돌아온다. 지라르의 시선에서 보면, 동궁의 원귀들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산 자들이 자기 욕망을 위해 희생시킨 자들이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자, 그 폭력에 대한 뒤늦은 고발이다.

원한이 초자연으로 돌아올 때

억압된 것이 초자연적 존재가 되어 돌아온다는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예전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융의 그림자 개념을 빌려 적은 글에서, 억눌린 수치심이 악령이 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케데헌이 한 개인의 내면에서 억압된 것이 악령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였다면, 동궁은 한 사회에서 억압되고 희생된 것이 귀신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개인의 그림자와 공동체의 희생양. 두 작품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같은 진실을 말한다. 억눌리고 지워진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

동궁이 오컬트라는 장르를 통해 끝내 들려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궁궐을 떠도는 귀신들은 사실 산 자들이 만든 것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이 무고한 희생을 낳고, 그 희생이 저주가 되어 돌아온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귀신을 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원한의 근원에 있는 산 자들의 욕망과 폭력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구천과 생강의 진짜 임무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귀신을 쫓는 퇴마사이면서, 동시에 그 귀신을 만들어낸 인간들의 죄를 파헤치는 추적자다.

아쉬움과 기대 사이

물론 이 작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반전이 거듭되면서 이야기의 몰입감이 다소 흩어지는 부분도 있고, 감정선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아쉬움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한국어 작품인데도 한글 자막을 켜고 봐야 했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배우들의 낮은 톤 연기가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기여했지만, 대사 전달이라는 기본적인 부분에서는 손해를 본 셈이다.

그럼에도 동궁은 한국형 오컬트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 작품이다. 귀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붉은빛으로 연결하는 그 독특한 비주얼, 남주혁과 노윤서의 콤비 플레이, 그리고 조승우를 비롯한 베테랑 배우들이 잡아주는 극의 무게감. 무엇보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폭력과 희생을 낳는가라는 깊은 주제를, 오컬트라는 장르의 옷을 입혀 흥미롭게 풀어냈다. 열린 결말이 시즌 2를 기대하게 만드는 만큼, 이 조선의 저주받은 궁궐 이야기가 다음에는 또 어떤 희생양의 진실을 파헤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