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리쾨르3 시크릿 에이전트 — 반어법의 제목, 그리고 리쾨르가 말한 기억의 의무 어떤 영화는 제목이 곧 한 편의 반어법이다. 시크릿 에이전트가 그렇다. 이 제목을 처음 들으면 누구나 화려한 첩보 액션을 떠올린다. 비밀 요원, 총격전, 음모와 반전. 그러나 브라질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그 모든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한다. 여기에는 멋진 스파이도, 통쾌한 액션도 없다. 대신 한 시대의 서늘한 공기가, 그 시대를 살아낸 한 남자의 침묵이 두 시간 반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제목이 반어법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첩보 요원이 아니라, 그저 자기 이름을 숨긴 채 살아남아야 했던 한 평범한 인간이다. 그가 비밀요원처럼 이름을 버리고 위장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은 어떤 화려한 임무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시크릿 에이전트.. 2026. 7. 10. 본 슈프리머시 — 되찾은 기억이라는 빚, 그리고 리쾨르가 말한 책임 본 아이덴티티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는 영화였다면, 본 슈프리머시는 그렇게 찾은 자기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영화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서 감독은 더그 라이먼에서 폴 그린그래스로 바뀌는데, 그 교체와 함께 영화의 결도 한층 무거워진다. 1편의 핸드헬드 카메라가 만들어낸 그 사실적인 긴장이 2편에서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밀도로 끌어올려진다.그러나 이 영화가 1편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은 액션이 아니라 주인공의 마음이다. 1편의 본이 자기 과거를 모른 채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이었다면, 2편의 본은 자기 과거를 알게 된 채 그 과거의 무게와 마주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무게의 한가운데에 한 가지가 놓여 있다. 죄책감이다.마리의 죽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추적영화는 한 죽음에.. 2026. 6. 22. 내 이름은 영화 후기와 폴 리쾨르의 기억과 망각으로 본 잃어버린 이름 2026년 4월에 개봉한 〈내 이름은〉은 정지영 감독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영화이자, 9,778명의 시민이 직접 후원해 시작된 작품이다. 제7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었고, 우디네 극동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영화는 촌스러운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1998년 봄의 열여덟 살 아들 영옥(신우빈)과, 여덟 살 이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채 살아온 그의 어머니 정순(염혜란)의 두 시간을 천천히 교차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관에서 직접 본 감상과 함께,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기억과 망각' 개념을 빌려 영화가 들려주는 한 가지 약속을 들여다보려 한다.1. 롯데시네마 서수원에서 본 내 이름은 영화 후기롯데시네마 서수원에서 〈내 이름은〉을 봤다. 평.. 2026. 5.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