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영화27 본 얼티메이텀 — 나는 자원했다, 그리고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본 아이덴티티에서 시작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본 얼티메이텀에서 끝을 맺는다. 1편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는 영화였고 2편이 그 과거의 빚을 책임지는 영화였다면, 3편은 자기를 그렇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끝내 자기가 누구였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영화다. 폴 그린그래스가 2편에 이어 다시 연출한 이 완결편은, 핸드헬드 카메라의 그 숨 가쁜 리듬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시리즈 전체를 하나로 닫는다.워털루역의 추격, 탕헤르의 옥상을 가로지르는 질주, 뉴욕 한복판의 마지막 대결. 영화는 두 시간 내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질주가 향하는 곳은 한 가지 진실이다. 제이슨 본이라는 한 암살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 진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본 자신조차 외면하고 싶었던 한 가지가 .. 2026. 6. 23. 본 슈프리머시 — 되찾은 기억이라는 빚, 그리고 리쾨르가 말한 책임 본 아이덴티티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는 영화였다면, 본 슈프리머시는 그렇게 찾은 자기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영화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서 감독은 더그 라이먼에서 폴 그린그래스로 바뀌는데, 그 교체와 함께 영화의 결도 한층 무거워진다. 1편의 핸드헬드 카메라가 만들어낸 그 사실적인 긴장이 2편에서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밀도로 끌어올려진다.그러나 이 영화가 1편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은 액션이 아니라 주인공의 마음이다. 1편의 본이 자기 과거를 모른 채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이었다면, 2편의 본은 자기 과거를 알게 된 채 그 과거의 무게와 마주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무게의 한가운데에 한 가지가 놓여 있다. 죄책감이다.마리의 죽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추적영화는 한 죽음에.. 2026. 6. 22. 본 아이덴티티 — 기억을 잃은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로크가 말한 인격동일성 한 남자가 지중해 바다 위에 떠 있다. 어부들이 그를 건져 올렸을 때, 그의 등에는 총알이 박혀 있고 엉덩이 피부 밑에는 스위스 은행 계좌번호가 새겨진 작은 장치가 들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본 아이덴티티는 이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한 남자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이 영화가 첩보 액션의 한 시대를 연 작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화려한 장비도 멋진 슈트도 없이, 핸드헬드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그 거칠고 사실적인 액션은 이후 수많은 첩보물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깊게 마음에 남은 것은 그 액션이 아니었다. 제목 그 자체, 아이덴티티라는 한 단어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를 나로 만드.. 2026. 6. 21.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퓨리오사의 질주, 그리고 들뢰즈가 말한 탈주선 어떤 영화는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그렇다. 누군가 이 영화의 줄거리를 묻는다면 한 문장으로 끝난다. 사막을 가로질러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한 문장짜리 영화가 두 시간 내내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조지 밀러라는 한 노장이 일흔의 나이에 만들어낸 이 영화는, 영화가 이야기가 아니라 운동 그 자체로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감각이 아직 생생하다. 대사는 거의 없고, 설명은 더더욱 없다. 그저 황량한 사막 위를 질주하는 차들, 모래폭풍, 불을 뿜는 기타,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 그 모든 것이 한 덩어리의 거대한 운동이 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관을 나서며 든 생각은 단순했다... 2026. 6. 20.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영화 앞에서 잠든 한 관객, 그리고 손택의 시선 이번 글은 좀 다른 결로 시작해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면서 영화 중간에 잠이 들었다.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극찬한 작품이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이라기에 Wavve에서 돈까지 주고 본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떠오른 한 마디는 단 한 줄이었다. "내가 영화를 볼 줄 모르는 건가?"그래서 이번 글은 칭찬보다는 의문에 가깝다. 평론가가 극찬하고 한 관객은 잠들었다면, 그 영화에 대한 진짜 평가는 어느 쪽인가. 수전 손택이라는 한 비평가의 시선을 빌리면 이 의문에 한 가지 답을 받을 수 있다.평론가는 극찬했고, 나는 잠들었다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25년 신작이다. 한물간 혁명가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16년 만에 .. 2026. 6. 5. 바람의 검심 — 켄신의 신념은 자기 합리화인가, 진짜 속죄인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기는 일은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 작업이다. 원작 팬의 마음을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매체의 문법으로 다시 짜내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런 중에도 "이건 잘 풀렸다"라고 단연 손꼽을 만한 작품이 한 편 있다. 바람의 검심이다.검술 액션 장면들의 완성도, 사토 타케루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일본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 초기로 이어지는 한 시대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화면 안에 풀어 놓는 미장센까지, 어느 자리 하나 빠질 데가 없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뒤에 가장 오래 머무는 것은 액션도 미장센도 아니다. 한 인물의 신념 한 줄이다.살인귀에서 떠돌이 검객으로영화의 주인공 히무라 켄신은 본래 막부 말기 조슈번 소속의 자객이었다. 도막파의 그림자 안에서 .. 2026. 6. 4.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