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영화32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영화가 역사를 불태울 때, 그리고 벤야민이 말한 구원의 역사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늘 한 가지 기분에 사로잡힌다. 방금 내가 본 것이 영화에 대한 영화, 그러니까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를 향한 한 편의 열렬한 헌사였다는 감각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특히 그렇다. 이 영화는 2차대전이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역사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역사를 통째로 다시 쓴다. 그것도 영화라는 무기를 들고서.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알도 레인 중위와 그가 이끄는 나치 사냥 특공대 바스터즈, 그리고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유대인 소녀 쇼샤나. 이 두 갈래의 이야기가 한 극장에서 만나 폭발하는 그 결말은,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왜냐하면 그 장면에서 히틀러가, 나치 수뇌부 전체가, 한 극장 안에서 .. 2026. 7. 17.
아이 인 더 스카이 — 소녀 한 명과 수십 명의 목숨, 그리고 왈저가 말한 정의로운 전쟁 어떤 영화는 총 한 발 쏘지 않고도 전쟁 영화의 한 정점에 오른다. 아이 인 더 스카이가 그렇다. 이 영화에는 참호도, 돌격도, 장렬한 전사도 없다. 대신 영국의 회의실과 미국의 드론 조종실, 그리고 케냐의 한 골목을 오가며, 단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그 팽팽한 시간만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하나의 질문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 영화는 숨 막히게 보여준다.이야기는 명료하다. 영국, 미국, 케냐 세 나라가 오랫동안 추적해온 테러 조직을 드론으로 제거하려 한다. 그런데 감시 드론이 포착한 영상 속에서, 이 조직이 자살 폭탄 테러를 준비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생포 작전은 즉시 사살 작전으로 바뀐다. 그러나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2026. 7. 14.
시크릿 에이전트 — 반어법의 제목, 그리고 리쾨르가 말한 기억의 의무 어떤 영화는 제목이 곧 한 편의 반어법이다. 시크릿 에이전트가 그렇다. 이 제목을 처음 들으면 누구나 화려한 첩보 액션을 떠올린다. 비밀 요원, 총격전, 음모와 반전. 그러나 브라질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그 모든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한다. 여기에는 멋진 스파이도, 통쾌한 액션도 없다. 대신 한 시대의 서늘한 공기가, 그 시대를 살아낸 한 남자의 침묵이 두 시간 반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제목이 반어법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첩보 요원이 아니라, 그저 자기 이름을 숨긴 채 살아남아야 했던 한 평범한 인간이다. 그가 비밀요원처럼 이름을 버리고 위장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은 어떤 화려한 임무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시크릿 에이전트.. 2026. 7. 10.
케이팝 데몬 헌터스 — 루미의 문양, 그리고 융이 말한 그림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제 그 답은 하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도, 그 어떤 대작 시리즈도 넘지 못한 그 자리를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차지했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까지 거머쥐며, 이 작품은 단순한 화제작을 넘어 한 시대의 현상이 되었다.처음에는 그저 화려한 K-팝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했다. 중독성 강한 노래들, 눈을 사로잡는 퍼포먼스, 그리고 남산서울타워와 기와집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한국적 배경. 분명히 그 모든 것이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그 화려함이 아니었다. 한 소녀가 자기 몸에 새겨진 한 가지 표식을 숨기고, 부정하고, 끝내 받아들이는 그 내면의 여정이었다.. 2026. 6. 30.
히트 — 형사와 강도, 그리고 헤겔이 말한 인정의 변증법 어떤 영화는 두 배우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는 것만으로 영화사에 한 줄을 남긴다. 마이클 만의 히트가 그렇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 각자 한 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배우가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그것도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그 한 장면을 위해 영화는 거의 세 시간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 액션물로 기억하는 것은 이 영화를 절반만 본 것이다. 물론 LA 도심 한복판의 그 총격전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고, 발 킬머를 비롯한 강도단의 그 치밀한 작전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심장은 액션이 아니라 두 남자의 관계에 있다. 쫓는 형사와 쫓기는 강도, 분명히 적인 두 사람이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깊이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는 그 기묘한.. 2026. 6. 25.
본 얼티메이텀 — 나는 자원했다, 그리고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본 아이덴티티에서 시작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본 얼티메이텀에서 끝을 맺는다. 1편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는 영화였고 2편이 그 과거의 빚을 책임지는 영화였다면, 3편은 자기를 그렇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끝내 자기가 누구였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영화다. 폴 그린그래스가 2편에 이어 다시 연출한 이 완결편은, 핸드헬드 카메라의 그 숨 가쁜 리듬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시리즈 전체를 하나로 닫는다.워털루역의 추격, 탕헤르의 옥상을 가로지르는 질주, 뉴욕 한복판의 마지막 대결. 영화는 두 시간 내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질주가 향하는 곳은 한 가지 진실이다. 제이슨 본이라는 한 암살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 진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본 자신조차 외면하고 싶었던 한 가지가 .. 2026.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