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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4

나홍진 스페셜 ③ 곡성 — 증거 없이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키르케고르의 신앙의 도약 나홍진 감독 스페셜의 마지막으로, 그의 세계가 도달한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꺼낸다. 곡성이다. 2016년에 나온 이 작품은 개봉 이후 지금까지도 해석이 끊이지 않는다. 누가 악마인가, 무명은 무엇인가, 결말은 무슨 뜻인가. 감독 자신이 "범인은 명쾌하지만 해설은 자유롭다"고 말했을 만큼, 이 영화는 관객마다 다른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지난번 추격자를 다룰 때, 나홍진 감독이 부조리한 세계를 그린다고 적었다. 곡성은 그 부조리를 신과 믿음의 영역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추격자의 세계가 법과 정의가 무력한 곳이었다면, 곡성의 세계는 아예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세계 한가운데에서, 한 아버지가 딸을 살리기 위해 한 가지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 2026. 7. 9.
베테랑 — 어이가 없네, 그리고 호네트가 말한 무시와 인정투쟁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믿고 본다고 예전에 한 번 적은 적이 있다. 베테랑은 그 믿음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된 영화다. 1340만 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그러니까 한국 사람 넷 중 하나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는 그 숫자가 이미 한 가지를 말해준다. 이 영화에는 그 많은 사람의 가슴을 동시에 건드린 한 가지가 분명히 들어 있다.그 한 가지가 무엇일까. 처음에는 그저 통쾌함이라고 생각했다. 안하무인의 재벌 3세가 끝내 형사의 손에 잡히는 그 사이다 같은 결말.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베테랑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움직인 진짜 이유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아니라, 그 통쾌함 밑에 깔린 한 가지 더 깊은 감정에 있었다. 무시당한 자의 분노다. 조태오와 서도철, .. 2026. 6. 17.
공작 — 흑금성이라는 가면, 그리고 고프먼이 말한 무대 위의 자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묘한 무게를 가진다.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한 인물의 선택이 실제로 누군가가 살아낸 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등 뒤에서 가만히 따라온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이 그런 영화다.이 영화는 1990년대 중후반, 흑금성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북에 침투했던 한 실존 안기부 요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 고위층에 접근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 핵 개발 정보에 다가가는 한 남자. 총격도 격투도 거의 없는 이 조용한 첩보 영화가 두 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유는, 그 모든 긴장이 오직 한 가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가면이다. 한 인간이 자기 진짜 얼굴을 완벽하게 숨긴 채 다른 한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는 그 끝없는 긴장.흑금성이라는 가면공작의 주.. 2026. 6. 15.
서울의 봄 — 1979년 12월의 그 밤, 그리고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 오랜만에 한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마주한 영화를 보았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다. 1979년 12월 12일, 그 한밤중에 한국 현대사의 한 큰 흐름이 결정적으로 굳어지던 그 풍경을 두 시간 가까이 화면 안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영화를 보기 전부터 분명히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한국이 어떤 시대로 들어섰는지를. 그런데 영화는 그 분명한 결과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도 두 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미 닫혀 있는 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영화는 어떻게 그렇게 다시 살아 움직이는 풍경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은 한 가지 질문이 거기서 시작되었다.1979년 12월의 그 한밤영화의 무대는 1979년 12월 12일의 밤이.. 2026.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