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믿고 본다고 예전에 한 번 적은 적이 있다. 베테랑은 그 믿음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된 영화다. 1340만 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그러니까 한국 사람 넷 중 하나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는 그 숫자가 이미 한 가지를 말해준다. 이 영화에는 그 많은 사람의 가슴을 동시에 건드린 한 가지가 분명히 들어 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일까. 처음에는 그저 통쾌함이라고 생각했다. 안하무인의 재벌 3세가 끝내 형사의 손에 잡히는 그 사이다 같은 결말.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베테랑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움직인 진짜 이유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아니라, 그 통쾌함 밑에 깔린 한 가지 더 깊은 감정에 있었다. 무시당한 자의 분노다.
조태오와 서도철, 두 세계의 충돌
베테랑의 구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한쪽에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있다. 그는 돈과 권력으로 못 할 것이 없다고 믿는 인물이고, 자기 앞의 모든 인간을 자기 발밑의 도구쯤으로 여긴다. 다른 한쪽에는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있다. 그는 거칠고 정의롭고 끈질긴, 전형적인 한 명의 베테랑 형사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충돌을 축으로 굴러간다.
두 사람을 충돌시키는 한 사건이 영화 초반에 놓인다. 조태오의 회사에 임금을 받지 못한 화물 노동자 배기사가 항의하러 찾아오고, 조태오는 그를 가지고 놀듯 짓밟는다. 돈 몇 푼을 던져주고 자기들끼리 때리게 만드는 그 잔인한 유희. 그리고 그 사건이 한 사람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다. 서도철이 이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한 명의 형사와 한 명의 재벌 3세 사이의 끝까지 가는 싸움이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한 장면, 조태오가 내뱉는 "어이가 없네"라는 그 대사를 떠올려본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그가 보이는 그 황당하다는 반응. 이 대사가 그토록 강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그것이 한 인간을 짓밟고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한 권력자의 내면을 한 줄로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네트가 말한 무시
여기서 한 명의 독일 철학자가 떠오른다. 악셀 호네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흐름을 잇는 사회철학자인데, 그가 평생 붙들어 온 한 가지 개념이 베테랑이라는 영화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다. 인정(Anerkennung), 그리고 그 반대편의 무시(Mißachtung)다.
호네트의 통찰은 이렇다. 인간은 단지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데에 그보다 더 근본적인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일이다. 나의 존재가, 나의 노동이, 나의 존엄이 타인에게 한 사람의 몫으로 인정받는 것. 호네트는 이 인정이야말로 인간 삶의 가장 깊은 토대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무시가 있다. 한 사람을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나 사물처럼 다루는 것, 그의 존엄을 짓밟는 것. 호네트가 보기에 인간이 가장 깊이 분노하는 순간은 자기 이익을 빼앗겼을 때가 아니라, 바로 이 무시를 당했을 때다.
호네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회의 많은 갈등과 저항이 사실은 이 무시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인정투쟁이라 불렀다. 무시당한 사람들이 자기 존엄의 인정을 요구하며 벌이는 싸움. 역사 속 수많은 저항과 운동의 밑바닥에 이 무시당한 자의 분노가 깔려 있다는 것이 호네트의 시선이다.
베테랑을 이 시선으로 보면 영화의 진짜 동력이 분명해진다. 조태오가 배기사에게 한 짓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완벽한 무시였다. 그를 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돈으로 가지고 노는 한 장난감으로 다룬 것. 그리고 서도철이 그토록 끈질기게 조태오를 쫓는 진짜 이유도 단지 법을 어겼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렇게 철저히 무시하는 그 광경 앞에서 솟아오르는 분노, 호네트가 말한 바로 그 분노가 서도철을 움직이는 가장 깊은 동력이다.
우리가 그 통쾌함에 열광한 진짜 이유
그렇다면 1340만 명의 관객은 왜 이 영화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호네트의 시선은 그 질문에도 한 가지 답을 준다. 우리 대부분은 살면서 크고 작은 무시를 겪는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돈 앞에서, 어떤 위계 앞에서 한 사람의 존엄이 가볍게 짓밟히는 경험. 그리고 그 무시 앞에서 우리는 대개 무력하다. 현실에서 그 무시에 정확한 응징이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베테랑은 바로 그 자리를 정확히 건드린다. 영화 속 서도철은 우리가 현실에서 끝내 하지 못한 그 일을 대신 해준다. 무시한 자에게 분명한 응징을 돌려주는 일. 관객이 느끼는 그 통쾌함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쾌감이 아니라, 무시당한 자가 마침내 자기 존엄을 되찾는 그 인정투쟁의 대리 승리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시원해했던 진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비슷한 종류의 사이다를 다른 작품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참교육을 보고 미셸 푸코의 시선을 빌려 적은 글에서, 우리가 학교 안의 갑질을 응징하는 이야기 앞에서 느끼는 그 통쾌함의 정체를 다룬 적이 있다. 참교육이 사라진 처벌의 스펙터클이라는 각도에서 그 사이다를 봤다면, 베테랑은 무시당한 자의 인정투쟁이라는 각도에서 같은 종류의 통쾌함을 보여준다. 두 작품이 건드리는 우리 마음의 자리가 사실은 같다.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그 깊은 무시의 경험,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응징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 갈망.
다시 봐도 시원한, 그러나 한 줄 더 깊은
베테랑은 분명히 잘 만든 오락 영화다. 빠른 전개, 명확한 선악 구도, 통쾌한 결말. 영화관을 나설 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그 감각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고, 그 목적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달성한 영화다. 1340만이라는 숫자가 그 증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영화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 통쾌함 밑에 우리 사회의 한 가지 깊은 상처를 정확히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앞에서 한 인간의 존엄이 너무 쉽게 무시당하는 현실, 그리고 그 무시에 정당한 응징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갈망. 베테랑은 화려한 액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은 그 무시당한 자들의 마음을 대신 풀어주는 한 편의 인정투쟁 드라마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시 봐도 시원하고, 다시 봐도 그 시원함 밑의 한 줄이 묵직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