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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20

나홍진 스페셜 ③ 곡성 — 증거 없이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키르케고르의 신앙의 도약 나홍진 감독 스페셜의 마지막으로, 그의 세계가 도달한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꺼낸다. 곡성이다. 2016년에 나온 이 작품은 개봉 이후 지금까지도 해석이 끊이지 않는다. 누가 악마인가, 무명은 무엇인가, 결말은 무슨 뜻인가. 감독 자신이 "범인은 명쾌하지만 해설은 자유롭다"고 말했을 만큼, 이 영화는 관객마다 다른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지난번 추격자를 다룰 때, 나홍진 감독이 부조리한 세계를 그린다고 적었다. 곡성은 그 부조리를 신과 믿음의 영역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추격자의 세계가 법과 정의가 무력한 곳이었다면, 곡성의 세계는 아예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세계 한가운데에서, 한 아버지가 딸을 살리기 위해 한 가지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 2026. 7. 9.
나홍진 스페셜 ② 추격자 — 잡아도 풀려나는 세계, 그리고 카뮈가 말한 부조리 나홍진 감독 스페셜의 두 번째로, 그가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린 작품을 꺼낸다. 추격자다. 2008년에 나온 이 데뷔작은 한국 스릴러의 판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과 이후가 나뉜다고 할 만큼, 이 영화가 보여준 밀도와 긴장은 충격적이었다.지난번 황해를 다룰 때, 그 영화가 법과 질서가 사라진 자연 상태를 그린다고 적었다. 추격자는 그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의 세계에는 분명히 법이 있고, 경찰이 있고,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범인을 두 손으로 붙잡아 경찰서에 넘겼는데도, 그 시스템이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죽어간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법이 무력해서 벌어지는 그 비극. 추격자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그 .. 2026. 7. 6.
나홍진 스페셜 ① 황해 — 법이 사라진 곳의 인간, 그리고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이번 달 개봉한다. 그 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그의 지난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추격자로 강렬하게 등장해 곡성으로 한국 영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한 편씩 다시 짚어보려 한다. 그 첫 번째로, 나는 그의 두 번째 장편 황해를 꺼낸다.황해는 보고 나면 한동안 몸이 얼얼해지는 영화다. 화려한 액션의 쾌감이 아니라, 짐승처럼 쫓기고 쫓는 인간들의 날것 그대로의 생존이 두 시간 반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하정우가 연기한 조선족 구남과 김윤석이 연기한 면가. 이 두 사람이 벌이는 그 처절한 추격의 밑바닥에는, 한 가지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놓여 있다. 법과 질서가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빚, 밀항, 그리고 청부살인영화의 주인공 구남.. 2026. 7. 2.
끝장수사 — 종결된 사건을 다시 여는 형사, 그리고 윌리엄스가 말한 진실성 작은 사건 하나가 거대한 진실로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묘한 힘이 있다. 끝장수사가 그런 영화다. 시골 교회 헌금함에서 사만 팔천칠백 원을 훔친 좀도둑 하나를 잡는 데서 시작된 이야기가, 종결된 줄 알았던 한 살인사건의 진범을 쫓는 끝장 수사로 번져간다. 작은 실에서 시작해 거대한 매듭까지 풀어가는 그 추적의 재미가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영화의 두 주인공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쌍이다. 한때 광역수사대의 에이스였지만 한 사건을 말아먹고 촌구석으로 좌천된 베테랑 형사 재혁, 그리고 두뇌와 자신감으로 무장한 인플루언서 출신의 MZ 신입 형사 중호. 처음에는 사사건건 부딪히던 두 사람이, 한 사건을 함께 파고들며 서로를 다시 보게 되고 끝내 한 팀으로 거듭난다. 그 버디 케미가 영화의 큰 즐거움이다. 그러.. 2026. 6. 29.
범죄도시 — 마석도의 주먹, 그리고 벤야민이 말한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제 한국 액션 영화의 한 상징이 되었다. 마동석이라는 한 배우의 거대한 주먹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그 주먹 한 방에 악당이 나가떨어질 때마다 영화관 전체가 통쾌함으로 들썩인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2017년의 범죄도시1이었다.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그 감각이 아직 생생하다. 가리봉동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는 장첸이라는 한 잔혹한 범죄자, 그리고 그를 쫓는 괴물 같은 형사 마석도. 두 사람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그 압도적인 긴장과, 마석도의 주먹이 장첸을 제압하는 그 마지막의 통쾌함. 분명히 잘 만든 오락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통쾌함 한가운데에서 한 가지 묘한 질문이 떠올랐다. 마석도가 장첸을 제압하는 그 방식은, 과연 장첸의 방식과 얼마나 다른가.마석도의.. 2026. 6. 19.
실미도 — 만들어지고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 한 영화가 천만 명을 모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2003년의 한국은 실미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 한국 영화사에서 최초로 천만 관객을 넘긴 이 영화는 단순한 흥행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한 가지 이야기를 정면으로 끌어올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실미도는 1968년에 창설되었던 한 비밀 부대, 흔히 684부대라 불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무겁다.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그 비극이 누군가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한 시대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가슴에 남는다. 국가가 한 무리의 인간을 만들어내고, 쓰고, 끝내 지워버린 그 이야기.만들어지고 버려진 사람들영화의 시작은 한 가지 모집에서 .. 2026.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