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이번 달 개봉한다. 그 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그의 지난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추격자로 강렬하게 등장해 곡성으로 한국 영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한 편씩 다시 짚어보려 한다. 그 첫 번째로, 나는 그의 두 번째 장편 황해를 꺼낸다.
황해는 보고 나면 한동안 몸이 얼얼해지는 영화다. 화려한 액션의 쾌감이 아니라, 짐승처럼 쫓기고 쫓는 인간들의 날것 그대로의 생존이 두 시간 반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하정우가 연기한 조선족 구남과 김윤석이 연기한 면가. 이 두 사람이 벌이는 그 처절한 추격의 밑바닥에는, 한 가지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놓여 있다. 법과 질서가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

빚, 밀항, 그리고 청부살인
영화의 주인공 구남은 중국 연변의 택시 기사다. 아내를 한국으로 돈 벌러 보냈지만 소식이 끊겼고, 그 와중에 빚만 산더미처럼 쌓였다. 도박으로도 헤어나올 수 없는 그 빚 앞에서, 그는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한국으로 밀항해 한 사람을 죽이고 오면 빚을 없애주겠다는 것. 면가라는 이름의 그 남자가 내미는 거래다.
구남은 그 거래를 받아들이고 황해를 건넌다. 낡은 배의 밑창에 몸을 숨긴 채, 법의 경계를 몰래 넘어 한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그가 청부받은 살인은 시작부터 틀어진다. 그가 죽이려던 대상은 이미 다른 자들에게 살해당하고, 구남은 순식간에 살인 누명을 쓴 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경찰도 그를 쫓고, 조직 폭력배도 그를 쫓고, 그리고 그를 보낸 면가마저 그를 쫓는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한 인간이 온 세상에 쫓기며 오직 살아남기 위해 짐승처럼 달리는 순수한 생존극이 된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
이 영화의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한 명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다. 그는 1651년에 펴낸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국가와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그가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라 부른 것이다.
홉스의 통찰은 어둡고 냉정하다. 그는 인간을 다스리는 국가와 법이 없다면, 인간 세계는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상태로 떨어진다고 보았다. 모두가 모두를 경계하고, 모두가 모두의 적이 되는 상태. 누구도 자기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힘에 기댈 수 없고, 오직 자기 힘으로만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다. 홉스는 그런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다. 법이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가 된다는 것이 홉스의 냉혹한 결론이었다.
황해가 그리는 세계가 정확히 홉스의 자연 상태다. 구남이 던져진 그 세계에는 그를 지켜줄 어떤 법도 질서도 없다. 그는 밀항자이고, 조선족이고, 살인 누명을 쓴 도망자다. 국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국가의 법이 오히려 그를 쫓는다. 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몸뚱이 하나뿐이다. 경찰도, 조직도, 그를 보낸 자마저도 모두 그의 적이 된 그 세계에서, 구남은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한가운데에 홀로 던져진 셈이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그 짐승 같은 몸부림은, 자연 상태에 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를 가장 날것으로 보여준다.
면가라는 이름의 야수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김윤석이 연기한 면가다. 그는 개장수이자 구남을 보낸 청부업자인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거의 신화적인 야수의 경지에 이른다. 도끼와 칼, 심지어 소뼈다귀까지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무기로 삼아 사람을 도륙하는 그 압도적인 폭력. 면가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홉스의 시선에서 보면 면가야말로 자연 상태를 완벽하게 체화한 인간이다. 그에게는 어떤 도덕도, 어떤 망설임도 없다. 오직 자기 목적을 위한 순수한 힘의 행사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의 바깥에서 자기가 곧 법인 것처럼 행동한다. 면가가 그토록 공포스러운 이유는 그가 단순히 힘이 세서가 아니라, 법과 질서라는 인간 세계의 규칙이 그에게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홉스가 말한 그 늑대,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그 자연 상태의 화신이다.
법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서는 예전에 범죄도시1을 보고 발터 벤야민의 폭력론을 빌려 적은 글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다룬 것이 법을 지키는 공권력의 폭력과 법을 어기는 범죄의 폭력이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면, 황해의 면가는 아예 그 법이라는 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폭력을 보여준다. 범죄도시의 세계에는 그래도 법과 공권력이라는 틀이 있었지만, 황해의 세계에는 그것조차 없다. 면가의 폭력은 법 안의 폭력도 법 밖의 폭력도 아니라, 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도달하지 못한 자연 상태의 폭력이다.
국가의 보호 밖에 던져진 존재
구남이라는 인물이 특히 비극적인 이유는 그가 처음부터 국가의 보호 바깥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족이고 밀항자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그를 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이라는 국가도 그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는 어느 국가의 리바이어던에도 속하지 못한 채, 두 나라 사이의 황해 위에 떠 있는 존재다.
국가의 보호 밖에 버려진 인간에 대해서는 예전에 실미도를 보고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을 빌려 적은 글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 글의 684부대원들이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버려진 존재였다면, 황해의 구남은 애초에 어떤 국가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다. 홉스는 인간이 자연 상태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에 자기 권리를 맡긴다고 보았다. 그러나 구남 같은 존재는 그 리바이어던의 보호 바깥에 있다. 그래서 그는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의 공포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한다. 그를 지켜줄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짐승의 시간을 지나
황해가 위대한 영화인 이유는, 이 냉혹한 자연 상태 한가운데에서도 구남이 끝내 놓지 않는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 모든 지옥을 뚫고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결국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짐승처럼 쫓기고 쫓는 그 세계에서도, 구남의 마음 밑바닥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끈이 남아 있다. 홉스가 그린 자연 상태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도, 영화는 그 한 가닥 인간성을 끝내 놓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의 세계는 늘 그렇다. 그는 인간을 가장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짐승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럼에도 무엇이 끝내 남는가를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황해는 그 집요함이 처음으로 활짝 펼쳐진 작품이다. 법과 질서가 사라진 자연 상태의 황무지를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추격 액션을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한 편의 깊은 질문이 되는 이유다. 다음으로는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작품, 추격자를 꺼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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