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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아이덴티티 — 기억을 잃은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로크가 말한 인격동일성

by Life philosophy 2026. 6. 21.

한 남자가 지중해 바다 위에 떠 있다. 어부들이 그를 건져 올렸을 때, 그의 등에는 총알이 박혀 있고 엉덩이 피부 밑에는 스위스 은행 계좌번호가 새겨진 작은 장치가 들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본 아이덴티티는 이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한 남자가,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

이 영화가 첩보 액션의 한 시대를 연 작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화려한 장비도 멋진 슈트도 없이, 핸드헬드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그 거칠고 사실적인 액션은 이후 수많은 첩보물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깊게 마음에 남은 것은 그 액션이 아니었다. 제목 그 자체, 아이덴티티라는 한 단어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영화 본 아이덴티티 포스터

 

기억을 잃은 자는 누구인가

영화의 주인공은 자기가 제이슨 본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이름을 알게 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자기 몸이 위기의 순간마다 자동으로 보여주는 그 놀라운 격투 능력, 여러 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 한 공간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모든 출구와 위협을 파악하는 능력. 이 모든 것이 자기 안에 들어 있는데, 정작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거기서 시작된다. 본은 자기 몸에 새겨진 그 능력들을 통해 자기가 한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금씩 추적해간다. 그리고 그 추적의 끝에서 그가 마주하는 진실은 잔혹하다.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은 CIA의 비밀 암살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한 명의 살인 병기였다는 사실. 자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과거의 자기 정체가, 사실은 지금의 자기가 가장 거부하고 싶은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묘한 질문이 떠오른다. 기억을 잃은 지금의 본과, 기억 속에 있는 암살자 본은 과연 같은 사람인가. 같은 몸을 가졌고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한 사람은 자기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과거 그 자체다. 이 둘을 하나의 동일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로크가 말한 기억과 인격

이 질문을 처음으로 깊이 파고든 한 사람이 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다. 그는 1689년에 펴낸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 사람을 어제의 그 사람과 오늘의 그 사람으로 동일하게 묶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격의 동일성이란 어디에 있는가.

로크의 답은 당시로서는 대담했다. 그는 인격의 동일성이 몸에 있는 것도, 영혼이라는 어떤 실체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은 오직 기억의 연속성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인 이유는, 내가 어제의 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을 통해 과거의 한 경험을 지금의 나의 것으로 의식하는 그 연속성, 바로 그것이 한 인격을 하나로 묶어준다. 로크는 이것을 의식의 동일성이라 불렀다. 한 사람이 자기 과거를 자기 것으로 기억하는 한에서만, 그 과거의 그와 지금의 그는 동일한 인격이라는 것이다.

이 시선에서 보면 본 아이덴티티는 로크의 철학을 거의 그대로 화면 위에 펼쳐 놓은 영화다. 기억을 잃은 본은 로크적인 의미에서 더 이상 과거의 암살자와 같은 인격이 아니다. 그는 그 암살자의 몸을 가졌고 그 암살자의 능력을 가졌지만, 그 암살자가 한 일들을 자기 것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연결고리가 끊어진 순간, 로크의 시선에서 그는 새로운 한 인격이 된 셈이다. 영화 제목이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이자 동일성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의 인격적 동일성이 기억의 끊김과 함께 어떻게 갈라지는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철학적 실험이다.

기억이 정하는가, 선택이 정하는가

그런데 영화는 로크의 시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본은 결국 자기 과거를 상당 부분 되찾는다. 자기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로크의 논리대로라면, 그 기억을 되찾은 순간 그는 다시 과거의 암살자와 동일한 인격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과거를 알게 된 뒤에도, 그 과거의 암살자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기를 만들어낸 그 조직을 등지고, 다른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다.

여기서 영화는 로크가 미처 다 답하지 못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정체성은 기억이 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택이 정하는 것인가. 본은 자기 과거를 기억하지만, 그 기억된 과거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내가 한때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 과거를 알면서도, 다른 내가 되기를 선택한다.

비슷한 결의 인물을 다른 영화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바람의 검심을 보고 막스 셸러의 회개론을 빌려 적은 글에서, 살인귀였던 과거를 짊어진 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한 인물 켄신을 다룬 적이 있다. 켄신과 본은 묘하게 닮은 자리에 서 있다. 둘 다 과거에 사람을 죽인 자였고, 둘 다 그 과거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려 한다. 다만 켄신은 자기 과거를 또렷이 기억한 채 그 무게를 짊어지고 속죄의 길을 갔고, 본은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뒤 그 과거를 거부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했다. 한 사람은 기억을 짊어지는 방식으로, 다른 한 사람은 기억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각자 자기 과거와 마주한 셈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의 무게

본 아이덴티티가 단순한 첩보 액션을 넘어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추격과 격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내 과거인가, 내 기억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는 그 의지인가.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기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 과거가 지금의 자기를 어디까지 규정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한 번쯤 선다. 본 아이덴티티는 그 질문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한 남자의 추적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끝내 한 가지 답을 조용히 내민다. 내 과거가 나의 한 부분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는 끝내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답을. 본이 암살자의 기억을 되찾고도 그 길을 거부했을 때, 그는 자기 정체성을 기억에 내어주지 않고 자기 손으로 다시 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