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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영화 앞에서 잠든 한 관객, 그리고 손택의 시선

by Life philosophy 2026. 6. 5.

이번 글은 좀 다른 결로 시작해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면서 영화 중간에 잠이 들었다.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극찬한 작품이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이라기에 Wavve에서 돈까지 주고 본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떠오른 한 마디는 단 한 줄이었다. "내가 영화를 볼 줄 모르는 건가?"

그래서 이번 글은 칭찬보다는 의문에 가깝다. 평론가가 극찬하고 한 관객은 잠들었다면, 그 영화에 대한 진짜 평가는 어느 쪽인가. 수전 손택이라는 한 비평가의 시선을 빌리면 이 의문에 한 가지 답을 받을 수 있다.

영화 원배틀애프터어나더 포스터

평론가는 극찬했고, 나는 잠들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25년 신작이다. 한물간 혁명가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16년 만에 다시 등장한 숙적 록조 대령(숀 펜)에게서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구하기 위해 과거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이야기다. 로튼토마토 96%, 그리고 다음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여러 부문을 수상하며 평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기대가 컸다. 디카프리오가 주연이고, 평소 좋아하는 베니시오 델 토로가 세르지오 선생 역으로 등장하며, 숀 펜은 늘 그렇듯 한 인물의 광기를 누구보다 정교하게 그려낼 배우다. Wavve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는 두 시간 사십 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화면 앞에 앉아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어딘가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디카프리오의 무너진 한 남자의 연기는 분명히 좋았다. 베니시오 델 토로가 등장하는 짧은 컷마다 분위기는 단숨에 깊어졌고, 숀 펜은 등장만으로도 한 인물의 음습함을 화면 전체에 깔아놓았다. 그런데도, 어딘가에서 나는 졸기 시작했다. 영화 중간 한 대목에서 정말 잠이 들었다.

영화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있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지금의 미국을 향해 던지는 비판이다. 이민 단속, 백인우월주의의 그늘, 한때 거리에서 외쳤던 자유의 가치가 어떻게 한 세대를 지나며 흩어지는가에 대한 한 거장의 시선. 그 시선이 영화의 모든 장면 위에 깔려 있다는 사실은 보는 내내 분명히 느껴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게 영화가 내게 남긴 거의 전부였다. "현재의 미국을 보여주고 비판한다." 그 한 줄 외에는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한 컷이 없었다.

손택이 1966년에 적은 한 줄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1966년에 펴낸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라는 짧은 평론에서 한 가지를 정면으로 짚는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너무 자주 그 의미를 캐묻는다. 이 영화는 무엇을 비판하는가, 이 소설은 어떤 시대를 반영하는가, 이 음악은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손택이 보기에 이런 식의 해석학은 예술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죽인다. 작품이 우리에게 직접 전해주는 감각적 경험 그 자체.

손택의 가장 유명한 한 줄이 거기서 나온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에로틱이다." 그가 말한 에로틱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한 작품 앞에 앉았을 때 그것이 우리 몸 안의 어떤 곳을 직접 두드리는가, 그 두드림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정직한 응답을 말한다. 손택이 보기에 한 영화가 위대해지려면 그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느냐보다 먼저, 그 영화가 우리 감각의 어떤 부분을 흔드는가가 분명해야 한다.

이 시선에서 보면 한 관객이 영화 앞에서 잠이 들었다는 사실은 사소한 개인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잠은 그 영화가 그 관객의 감각을 두드리지 못했다는 정직한 응답의 한 형태다. 한 평론가가 그 영화의 정치적 의미를 96%로 평가했다고 해서, 그 잠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손택이 평생 옹호한 것은 바로 그런 정직한 감각의 응답이었다.

예전에 매트릭스를 보고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을 빌려 적은 글이 있다. 매트릭스 역시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다르다. 빨간 약과 파란 약 사이에 선 네오, 캡슐 안에 줄지어 누운 인간들, 총알을 피하는 슬로모션. 그 어떤 의미를 끄집어내기도 전에 화면이 먼저 관객의 감각을 직접 두드린다. 손택이 말한 예술의 에로틱이 매트릭스에는 가득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어떤 메시지가 매트릭스의 감각보다 깊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한 영화는 한 관객의 감각을 흔들었고, 다른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좋은 영화의 절반은 결국 감각이 결정한다.

그래도 좋았던 것, 배우들의 연기

영화 전체에 대해서는 그렇지만, 그 안에서 분명히 좋았던 것 한 가지는 있다. 배우들의 연기다. 디카프리오가 그려낸 밥 퍼거슨은 한때 신념을 위해 거리에 섰던 사람이 그 시간을 지나 어떻게 한 명의 무너진 인간이 되는지를 거의 한 표정 안에 다 담아냈다. 베니시오 델 토로의 세르지오 선생은 짧은 등장에도 화면 전체를 한 결로 묶어내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숀 펜의 록조는 정말 따로 말이 필요 없다. 한 인물이 광기로 천천히 흘러가는 그 결을, 그는 한 컷씩 정확하게 그려냈다.

영화 전체가 내 감각에 깊게 닿지는 못했지만, 이 세 배우의 연기 한 컷씩만 따로 떼어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를 한 번 본 보람은 있다고 생각한다.

잠들었던 한 영화에 대하여

그래서 결국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어떤 영화인가. 평론가들이 극찬한 그 모든 이유는 분명히 영화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이유들이 한 관객의 감각을 끝까지 잡지는 못했다. 그것이 영화에 대한 나의 정직한 결론이다. 손택이 옳다면, 그 잠 또한 영화에 대한 한 가지 평가다. 그래서 이 글에서 "잠들었다"는 그 솔직한 단어를 굳이 빼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같은 한 줄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인생 영화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한 번 본 것으로 충분한 영화일 것이다. 그 모든 응답이 다 가능하다. 다만 한 사람의 정직한 한 줄이 평론가의 한 줄에 묻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 그것이 이 글이 끝까지 들려주려 한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