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가 나오면 일단 보게 된다. 퓨리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처음 봤을 때는 2차대전 액션 영화 한 편을 본다는 마음이었는데, 영화가 끝났을 때 손에 남은 것은 액션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끝까지 함께한 다섯 사람의 얼굴이었다.
퓨리가 끝나고 한참 뒤에도 분명해진 것 한 가지가 있다. 이 영화는 액션 영화의 옷을 입은 우정 영화에 가깝다. 그리고 그 우정 영화의 옷 안쪽에 한 가지가 더 들어 있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액션이라는 옷, 우정이라는 본문
퓨리는 1945년 독일 영토 안쪽, 2차대전 유럽 서부전선의 마지막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미군 셔먼 전차 한 대 안에 다섯 명의 승무원이 있다. 차장 워대디 돈 콜리어(브래드 피트). 기독교인 보이드 "바이블" 스완(샤이아 라보프). 거친 입의 그래디 "쿤애스" 트래비스(존 번탈). 무뚝뚝하지만 신뢰가 깊은 트리니 "고르도" 가르시아(마이클 페냐). 그리고 며칠 전까지 타자수였다가 갑자기 이 전차에 배치된 풋내기 노먼 엘리슨(로건 러먼).
이 다섯 명이 한 전차 안에서 부딪치고, 화해하고, 결국 한 곳에서 같이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액션 장면들은 분명히 박진감 있게 잘 만들어졌다. 셔먼 한 대가 독일군 티거 한 대와 들판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는 장면은 전차전 장면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볼수록 그 액션 장면들조차도 결국 다섯 사람이 서로를 지키는 한 풍경의 일부로 다가온다.
다섯 명 사이의 갈등은 영화 중반 한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점령한 독일 마을에서 워대디가 노먼을 데리고 한 가정집에 들어가 두 여인과 잠시 평범한 시간을 보내려 할 때, 나머지 세 승무원이 그 자리에 거칠게 끼어든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그러진다. 그러나 그 어그러진 풍경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이 다섯 사람이 서로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본다. 거친 욕설과 험한 농담의 뒤편으로, 이 다섯 사람은 이미 한 가족이다. 가족 안에서만 가능한 거친 농담, 그러나 가족 안에서만 가능한 그 깊은 결속.
워대디, 그리고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
워대디라는 인물을 잠깐 더 들여다본다. 그는 분명 권위를 가진 차장이지만, 영화의 어느 순간에도 권위를 휘두르지 않는다. 그는 명령보다는 함께 견디는 방식으로 자기 자리를 잡는다. 풋내기 노먼이 차마 적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때, 그는 노먼의 손을 강제로 쥐고 한 발을 같이 쏜다. 잔인해 보이지만, 그 한 발이 결국 노먼을 살린다. 워대디가 보여주는 모든 리더의 자세는 그런 결이다. 명령으로 시키지 않고,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먼저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본다. 고장난 전차 한 대 안에 다섯 명이 갇혀 있고, 곧 독일 친위대 한 부대 전체가 들이닥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그 순간. 워대디는 부하들에게 도망쳐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명씩, 결국 모두가 그 자리에 남기로 결정한다. 워대디가 명령을 내려서가 아니다. 그저 워대디가 먼저 거기 남아 있기 때문이다. 리더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거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한 장면이 다른 어떤 리더십 책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시선이 떠오른다. 레비나스 자신이 2차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5년을 보낸 유대인이고, 그가 전후에 다듬은 철학의 한가운데에는 "타자의 얼굴(visage)"이라는 한 가지 개념이 놓여 있다. 그가 1961년에 펴낸 《전체성과 무한(Totalité et Infini)》에서 정리한 이 개념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그 얼굴 자체가 한 가지를 말 없이 명령한다. "나를 죽이지 말라." 그리고 그 명령을 들은 사람은 그 순간부터 그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퓨리의 마지막 장면을 레비나스의 시선으로 보면 영화가 또 한 번 새롭게 읽힌다. 워대디가 부하들과 그 자리에 남기로 결정한 것은 군인의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그가 부하들의 얼굴을 매일 마주해온 끝에, 그 얼굴들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떠안기로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노먼이라는 풋내기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먼저 마지막 자리에 남는 그의 결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노먼의 얼굴 한 컷에 대한 책임을 끝내 떠안는다.
직전에 월드워 Z를 보고 카뮈의 페스트를 빌려 적은 글에서 같은 배우 브래드 피트의 또 다른 책임의 인간을 다룬 적이 있다. 그 글의 제리 레인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는 책임이었다면, 퓨리의 워대디는 부하들 곁에 끝까지 남는 책임이다. 같은 배우가 그린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를 묶어 보면 흥미롭다.
마지막 자리, 다섯 개의 얼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박진감 있는 전차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전투 한가운데에 잠깐씩 끼어드는 다섯 사람의 짧은 시선들이다. 누군가는 성경을 짧게 인용하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누군가는 그저 옆 사람의 어깨에 손을 한 번 올린다. 영화의 진짜 감정은 거기에 있다.
다섯 명 중 결국 한 명만 살아남는다. 풋내기였던 노먼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한 손에 펜만 쥐어 본 적 있던 그 청년이, 마지막에는 그 시간을 살아 나간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그가 더 강해서가 아니다. 다른 네 명이 그가 살아 나가는 길에 자기들의 마지막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워대디가 마지막 순간 노먼에게 전차 밑으로 숨으라고 권하는 짧은 한 컷이, 영화 두 시간이 그리려 한 리더십의 정의 전체를 한 컷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한 장면은 노먼이 살아남아 들것에 실려 나가는 풍경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자기가 있던 전차 한 대를 본다. 그 전차 안에서 자기 인생의 가장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네 사람이, 다섯 명 중 살아 나간 단 한 사람의 시선 안에 잠시 함께 머문다. 영화는 그 한 컷으로 닫힌다.
다음에 또 누를 때
리더십이란 결국 무엇일까. 책 한 권으로도 다 못 정리할 질문이지만, 이 영화는 단 한 컷으로 답한다. 도망쳐도 좋은 순간에 끝내 도망치지 않고 부하들 옆에 먼저 남는 일. 자기 얼굴이 부하들의 얼굴과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 일. 워대디가 보여준 그 한 가지가, 퓨리가 액션 영화의 옷을 입고 끝까지 들려주려 한 한 줄이다.
다음에 다시 퓨리를 누르게 될 때는 또 어떤 한 컷이 새롭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다시 누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