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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 다시 보고 — 결국 남는 건 아버지와의 시간이다

by Life philosophy 2026. 5. 22.

좌석에 앉아 어둠이 내릴 때 가만히 화면만 응시하는 것이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고, 그래서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나에게는 "그 영화 안의 어떤 한 장면 앞에서 시간이 오래 멈췄다"는 뜻에 가깝다.

어바웃 타임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다시 볼 때마다 그 멈춤의 위치가 달라진다.

처음 봤을 때는 시간여행 설정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한 첫 만남을 무한히 다시 살아볼 수 있다거나, 망친 데이트를 처음부터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발상. 사랑 영화의 새로운 문법 같았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시 보고 나니 분명해졌다.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 영화도 아니고 사랑 영화도 아니다. 아버지 이야기다.

영화 어바웃타임 포스터

아버지가 비밀을 알려주는 첫 장면

팀의 아버지(빌 나이)가 아들에게 가문의 비밀을 알려주는 장면을 다시 떠올려본다. 책으로 가득한 서재, 헐렁한 카디건을 걸친 아버지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아들에게 시간여행 능력을 설명한다. 다른 영화였다면 이 장면은 큰 사건의 발단으로 화려하게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이 장면을 너무도 평범한 대화처럼 찍어둔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처음 면도하는 법이라도 알려주는 듯한 톤으로.

지금 와서 보면 이 첫 장면의 톤이 영화 전체의 결을 미리 결정했던 것 같다. 시간여행이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되는 영화. 결국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에 관한 영화.

탁구, 그리고 해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장면은 영화 곳곳에 흩어져 있다. 결혼식 전야의 짧은 격려. 손주가 태어났을 때 병실 복도에서의 포옹. 그러나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두 장면은 단연 탁구와 해변 산책이다.

탁구 장면은 거의 대사가 없다. 두 사람이 작은 탁구대를 두고 무심하게 공을 주고받는다. 그게 다다. 그런데도 그 짧은 컷이 길게 잔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것이 두 사람이 가장 자주 함께한 일상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반복했을 평범한 시간. 매일 같은 일상을 함께 견디는 사랑의 무게에 관해서는 예전에 노트북을 다시 보고 적었던 글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어바웃 타임의 탁구 장면은 그 노트북의 정서와 정확히 겹친다.

해변 장면은 더 직접적이다. 아버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아들은 시간여행을 써서 아버지와의 평범한 산책을 한 번 더 살아내려 한다. 두 사람이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파도 소리. 아버지의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린다. 둘 사이에 큰 대사는 없다. 그저 함께 걷는다.

매일을 두 번 살아라, 그러다 한 번만 살아라

영화의 결말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남긴다. 매일을 두 번 살아라. 한 번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한 번은 자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여기서 잠깐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시선이 떠오른다. 그는 시간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시계가 측정하는 외적이고 공간적인 시간, 그리고 우리 의식 안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가는 체험된 지속(durée). 그가 보기에 진짜 시간은 후자였다. 시계 시간은 분과 초로 잘라 셀 수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아내는 시간은 잘리지 않고 서로 스며들며 한 덩어리로 흐른다. 그래서 같은 60분이라도 어떤 60분은 한순간 같고 어떤 60분은 평생 같다는 것이다.

어바웃 타임의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는 베르그송이 평생 비판한 "잘라낼 수 있는 시계 시간"의 끝을 보여준다. 모든 순간을 분 단위로 되감을 수 있다면, 시간은 결국 우리 손안의 도구로 전락한다. 영화의 진짜 결말은 그 다음 한 장면에서 온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아들은 결국 시간여행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두 번 살지 않고 그저 한 번만 산다. 그 한 번을 그저 끝까지 산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가르침은, 베르그송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라낼 수 있는 시계 시간을 잊고 의식 안에서 흘러가는 지속 그 자체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었다.

영화 한 편이 두 시간 동안 시간여행의 온갖 가능성을 보여준 끝에, 결국 그 능력 없이 사는 법을 권하는 결말로 닫힌다는 것. 이것이 어바웃 타임을 다른 시간여행 영화와 분명히 구별짓는 지점이다.

다시 못 만날 사람과의 마지막 평범한 한 컷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자주 놀던 해변에서 마지막으로 그 놀이를 한 번 더 한다. 어른이 된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 모래를 던지고 파도를 쫓는다. 이 한 컷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다.

"만약 그때 그 시간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에 관해서는 만약에 우리를 보고 키르케고르를 빌려 한번 적었던 글이 있다. 그 글에서 키르케고르의 회상이라는 개념을 빌렸다면, 어바웃 타임에서 베르그송이 알려주는 것은 그 반대편이다. 가정법으로 과거를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조차 결국에는 내려놓고, 흘러가는 지속 그 자체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것.

우리는 누군가와의 마지막 평범한 시간이 마지막인 줄 알지 못한 채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어바웃 타임이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를 빌려 끝내 들려주고 싶었던 한 줄은 결국 단순했다. 곁에 있을 때, 한 번 더 보아라.

언젠가 다시 어바웃 타임을 꺼내 볼 것이다. 그때도 분명 혼자 볼 것이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그 탁구 한 컷 앞에서 시간이 가만히 멈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