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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Z 다시 보고 — 좀비라는 이름의 페스트, 그리고 카뮈

by Life philosophy 2026. 5. 28.

좀비 영화 중에 단연 1등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월드워 Z를 꼽는다. 넷플릭스에 떠 있을 때마다 자꾸 다시 누르게 되고, 어느새 몇 번을 봤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봤다.

이 영화만큼은 왜 그렇게 특별한가? 처음에는 그 답을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분명해진 것은, 월드워 Z가 좀비 영화의 옷을 입은 다른 무엇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쓴 《페스트》와 같은 결을 가진 영화라고 해도 좋다.

월드워Z 포스터

평범한 가장이 다시 직업으로 돌아간다는 것

월드워 Z의 주인공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은 흔한 액션 영웅이 아니다. 첫 장면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시리얼을 따라주고 아내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한 가정의 아빠다. 그러나 그가 한때는 UN의 위기조사관이었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직업을 내려놓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자 그는 자기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다시 그 직업으로 돌려보내진다. 가족 옆에 있고 싶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야 하는 한 남자의 풍경. 이 모순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만든다.

이 점이 다른 좀비 영화들과 월드워 Z를 결정적으로 갈라놓는 지점이다. 다른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다. 그러나 제리는 살아남기 위해 더 위험한 곳으로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간다. 그가 한국으로, 이스라엘로, 웨일스의 WHO 연구소로 가는 그 여정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도망이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한 진입이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제리의 얼굴에서 영웅적인 결연함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결심한 영웅이 아니라 직업으로 돌아간 한 가장이다.

브래드 피트가 그린 또 다른 한 남자에 관해서는 직전에 F1 더 무비를 보고 적은 글이 있다. 그 글에서 소니가 자기 의지로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자유의 인간이었다면, 월드워 Z의 제리는 가족 곁에 머물고 싶지만 끝내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책임의 인간이다. 같은 배우가 그린 정반대의 두 풍경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를 묶어서 보면 묘하게 흥미롭다.

카뮈의 페스트, 영화가 진짜 들려주려던 한 줄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펴낸 소설 《페스트(La Peste)》는 알제리의 한 도시 오랑에 갑작스럽게 페스트가 덮치는 이야기다. 도시는 봉쇄되고, 시민들은 그 안에서 죽음과 격리, 그리고 두려움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카뮈가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페스트라는 질병 자체가 아니다. 그는 페스트를 통해 한 가지를 물었다. 부조리한 재앙이 우리 일상을 덮쳐올 때, 평범한 인간은 그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설 수 있는가.

카뮈는 그 질문에 한 인물을 세워 답했다. 의사 리유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페스트를 막을 수도 없고, 도시 사람들을 다 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환자들을 진료하러 간다. 도망치지 않고, 그렇다고 거창한 사명감으로 자신을 부풀리지도 않으며,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카뮈가 보기에 부조리한 재앙 앞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태도는 그것이었다. 영웅이 되는 일도, 절망에 잠기는 일도 아닌, 그저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일.

월드워 Z의 제리 레인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의사 리유다. 그도 영웅적이지 않다. 그도 좀비를 다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때 익힌 직업으로 다시 돌아가, 거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영화가 끝까지 영웅 서사로 미끄러지지 않고 묘하게 차분한 톤을 유지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한국 장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대사

영화 초반에 한국의 미군 기지가 잠깐 배경으로 등장한다. 좀비 바이러스의 초기 단서를 찾아 제리가 처음 도착하는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 그 짧은 장면을 한국 관객으로서 마주할 때 묘한 감정이 든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두운 활주로 위로 비행기가 내려앉고, 그 안에서 군인들이 흠뻑 젖은 채로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 자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에는 큰 의미가 따로 부여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짧음과 무심함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진짜 팬데믹은 어디서 시작될지 누구도 모르고, 시작된 그곳은 단지 다음 정거장으로 향하기 위한 한 정거장일 뿐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그 한 장면으로 조용히 전한다.

영화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로 닫힌다. 좀비에게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해서, 이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 제리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 전쟁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라는 톤으로 흐른다. 카뮈가 《페스트》의 마지막 문장에서 했던 그 말이 정확히 떠오른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 두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도 매체도 다르지만, 끝까지 들려주고 싶었던 한 줄은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다시 누르게 되는 이유

좀비 영화 한 편이 인생 영화 목록에 올라간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좀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우리 일상을 덮쳐올 어떤 재앙 앞에서, 평범한 한 사람이 어떤 자세로 설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 이 영화를 다시 볼 때, 처음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무게가 화면 안에 깔려 있는 것은 그래서다.

다음에 다시 누를 때는 어떤 한 장면이 새롭게 보일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또 한 번 누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