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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스페셜 ② 추격자 — 잡아도 풀려나는 세계, 그리고 카뮈가 말한 부조리 나홍진 감독 스페셜의 두 번째로, 그가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린 작품을 꺼낸다. 추격자다. 2008년에 나온 이 데뷔작은 한국 스릴러의 판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과 이후가 나뉜다고 할 만큼, 이 영화가 보여준 밀도와 긴장은 충격적이었다.지난번 황해를 다룰 때, 그 영화가 법과 질서가 사라진 자연 상태를 그린다고 적었다. 추격자는 그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의 세계에는 분명히 법이 있고, 경찰이 있고,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범인을 두 손으로 붙잡아 경찰서에 넘겼는데도, 그 시스템이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죽어간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법이 무력해서 벌어지는 그 비극. 추격자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그 .. 2026. 7. 6.
나홍진 스페셜 ① 황해 — 법이 사라진 곳의 인간, 그리고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이번 달 개봉한다. 그 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그의 지난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추격자로 강렬하게 등장해 곡성으로 한국 영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한 편씩 다시 짚어보려 한다. 그 첫 번째로, 나는 그의 두 번째 장편 황해를 꺼낸다.황해는 보고 나면 한동안 몸이 얼얼해지는 영화다. 화려한 액션의 쾌감이 아니라, 짐승처럼 쫓기고 쫓는 인간들의 날것 그대로의 생존이 두 시간 반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하정우가 연기한 조선족 구남과 김윤석이 연기한 면가. 이 두 사람이 벌이는 그 처절한 추격의 밑바닥에는, 한 가지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놓여 있다. 법과 질서가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빚, 밀항, 그리고 청부살인영화의 주인공 구남.. 2026. 7. 2.
케이팝 데몬 헌터스 — 루미의 문양, 그리고 융이 말한 그림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제 그 답은 하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도, 그 어떤 대작 시리즈도 넘지 못한 그 자리를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차지했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까지 거머쥐며, 이 작품은 단순한 화제작을 넘어 한 시대의 현상이 되었다.처음에는 그저 화려한 K-팝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했다. 중독성 강한 노래들, 눈을 사로잡는 퍼포먼스, 그리고 남산서울타워와 기와집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한국적 배경. 분명히 그 모든 것이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그 화려함이 아니었다. 한 소녀가 자기 몸에 새겨진 한 가지 표식을 숨기고, 부정하고, 끝내 받아들이는 그 내면의 여정이었다.. 2026. 6. 30.
끝장수사 — 종결된 사건을 다시 여는 형사, 그리고 윌리엄스가 말한 진실성 작은 사건 하나가 거대한 진실로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묘한 힘이 있다. 끝장수사가 그런 영화다. 시골 교회 헌금함에서 사만 팔천칠백 원을 훔친 좀도둑 하나를 잡는 데서 시작된 이야기가, 종결된 줄 알았던 한 살인사건의 진범을 쫓는 끝장 수사로 번져간다. 작은 실에서 시작해 거대한 매듭까지 풀어가는 그 추적의 재미가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영화의 두 주인공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쌍이다. 한때 광역수사대의 에이스였지만 한 사건을 말아먹고 촌구석으로 좌천된 베테랑 형사 재혁, 그리고 두뇌와 자신감으로 무장한 인플루언서 출신의 MZ 신입 형사 중호. 처음에는 사사건건 부딪히던 두 사람이, 한 사건을 함께 파고들며 서로를 다시 보게 되고 끝내 한 팀으로 거듭난다. 그 버디 케미가 영화의 큰 즐거움이다. 그러.. 2026. 6. 29.
히트 — 형사와 강도, 그리고 헤겔이 말한 인정의 변증법 어떤 영화는 두 배우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는 것만으로 영화사에 한 줄을 남긴다. 마이클 만의 히트가 그렇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 각자 한 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배우가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그것도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그 한 장면을 위해 영화는 거의 세 시간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 액션물로 기억하는 것은 이 영화를 절반만 본 것이다. 물론 LA 도심 한복판의 그 총격전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고, 발 킬머를 비롯한 강도단의 그 치밀한 작전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심장은 액션이 아니라 두 남자의 관계에 있다. 쫓는 형사와 쫓기는 강도, 분명히 적인 두 사람이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깊이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는 그 기묘한.. 202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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